[안아브라함신부]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예수님께 드리는 참된 환호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이사야서 50,4-7
필리피서 2,6-11
루카복음 22,14ㅡ23,56<또는 23,1-49>

예수님께 드리는 참된 환호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이사야서 50,4-7
필리피서 2,6-11
루카복음 22,14ㅡ23,56<또는 23,1-49>




예수님께 드리는 참된 환호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Dominus Flevit! 주님의 눈물 성당! 이스라엘에 있는 이 성당을 1999년 부제반 성지순례 때 처음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신 상옥씨의 ‘임 쓰신 가시관’을 부르다가 묘한 감정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루카13,34-35)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 모습과 겹쳐지면서, ‘나는 그때의 예루살렘과 얼마만큼 다를까?’라는 물음이 생겨났던 것이 기억납니다.

오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호하는 날입니다. 교회가 오늘을 전례적으로 ‘환호’라는 기쁨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날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예수님의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례적 의미와는 달리 실제 이날, 예수님의 마음은 환호하는 군중과는 달리 애끓는 아픔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오늘 행보는 죽음을 향한 여정이기 때문이죠. 더구나 군중의 환호가 예수님의 삶에 대한 이해와 공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한 이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루카복음은 “제자들의 무리가 다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하였다.”라고 증언합니다.

누군가의 환대가 호기심과 기대감에 의한 것이라면 부담스러울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 호기심과 기대감이 채워지지 않게 되면 그 누구보다 무섭게 돌아서기 때문이죠. 예수님을 향한 군중의 환대가 바로 그러한 것이었고, 그래서 이 환대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몇몇 사람의 선동에 쉽게 돌변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에게 환호하던 군중이 며칠 후에 자신들이 그토록 환호하며 맞이했던 바로 그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외치게 된 것은 그들의 환호가 호기심과 기대심에 의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무엇인가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기대와 이로부터 생겨나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예수님을 구경하러 나온 군중 사이에서 예수님은 오직 홀로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과 3년을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조차도 이러한 군중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또 묻게 됩니다. 오늘의 나는 2000년 전의 그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호기심과 기대감에 손을 흔들며 예수님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호기심과 기대감에 미치지 않는 그 예수님을 언제라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그들과 나는 정말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과 다르기 위해, 그렇다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주님 수난 주일 강론을 준비하며 떠오른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신 상옥씨의 '예루살렘 예루살렘아'라는 곡인데, 루카복음 13장 34-35절의 말씀을 가지고 만든 노래입니다.

“♪ 어느 날 기도 중에 나는 예루살렘 보았노라/ 눈물 흘리며 탄식하는 주님을 난 보았노라/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넌 다시 날 못 보리라/ 핏빛 들던 예루살렘 그 비참한 모습 보이면서/ 나의 사랑아 예루살렘 피를 기억하라/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의 혼 널 덮치리라/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모으듯이/ 몇 번이나 내 자녀들을 내가 모으려 하였던가/ 그러나 넌 나의 말에 결코 응하지 않았다/ 예루살렘 내 성전은 버림받아 황폐해지리라/ 나의 사랑아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라/ 저 철새도 제 자릴 찾는데 너는 왜 내게 오질 않느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 이렇게 내 입에서 나를 온 맘으로 찬양할 때까지/ 정녕 나를 다신 못 보리라 너희는 날 못 보리라/예루살렘 내 입으로 나를 찬미 찬양할 때까지/예루살렘아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라/ 저 철새도 제 자릴 찾는데 너는 왜 내게 오질 않느냐/ 회개하여라. 땅을 치며 주님을 부르라/진실한 통회만이/ 날 만날 하나의 길 되리라. ♬~”

'세상과 나'라는 예루살렘을 향해 오늘도 입성하시는 주님을 진정으로 환호하는 방법은 나의 허물에 대한 진실한 통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마음에 되새기며 성주간을 보내도록 합시다. 아멘!







오렌테 페드로의 < 예루살렘 입성>, 1620년경, 오일에 캔버스화 112 x 127 cm, 생페테르브르그 에르미타슈 박물관 소장, 러시아

오렌테 페드로(1575-1644)는 스페인 출신의 바로크 화가다. 나귀를 탄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이루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으며 마중 나온 사람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며 예수님의 입성을 환영하고 있다. 종려나무는 영광과 순교를 상징한다. 예수님 옆으로 흰머리만 살짝 보이는 베드로가 예수님 곁을 바짝 따라가고 있다. 멀리 산등성에는 어린 아이를 안은 아낙과 아이들이 기대와 호기심으로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따라 가고 있다. 마태 복음서에 나오는 어린 나귀 새끼는 오렌테의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을 때 통과한 이 문은 골고타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갈 때도 지나가신 길이다.

*관리자 안내: '주님 눈물 성당'에 대한 글과 신상옥님의 '예루살렘, 예루살렘아' 노래가 <신앙 나누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