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브라함신부] 부활 제5주일: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2010년 5월 2일 일요일

부활 제5주일

사도행전 14,21ㄴ-27
요한 묵시록 21,1-5ㄴ
요한복음 13,31-33ㄱ.34-35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2010년 5월 2일 일요일



부활 제5주일


사도행전 14,21ㄴ-27
요한 묵시록 21,1-5ㄴ
요한복음 13,31-33ㄱ.34-35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신약성경의 4복음서 중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언급하는 복음서는 요한복음입니다. 'Αϒαπαω(아가파오)'가 37회, 'Αϒαπη(아가페)'가 7회, 'Φιλεω(필레오)'가 13회 나옵니다. 때문에 요한 복음서를 '사랑의 복음서'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특히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 역사의 동기, 방법, 목적을 사랑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아주 잘 설명해 준 구절로 유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동기) 외아들을 내주시어(방법),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목적)." 결국,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역사의 출발과 그 끝이 모두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그리스도교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주제어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코린토 1서 13장 1-13절에서 사랑의 중요함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 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사랑이 바로 제자 됨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좀 딱딱한 표현이지만,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제자 됨의 조건이기에 무조건 사랑만 하면,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랑에도 너무나 다양한 형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사랑 혹은 육체적 사랑, 정열적 사랑 혹은 냉철한 사랑, 진지한 사랑 혹은 경박한 사랑, 인격 완성에 도움이 되는 사랑 또는 파괴적 사랑 등등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또 사랑의 대상도 마음에 드는 사물이나 동물, 동료, 친구, 부모, 자녀, 여성, 남성 등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사랑하기만 하면, 사랑이라는 이름만 달고 있으면 무조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그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또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지에 따라 제자 됨의 조건을 채우는 사랑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됩니다.

어떤 사랑이어야 '제자 됨의 조건'을 채우는 사랑인가?
우선 '대상'이라는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누가 사랑에 빠져 있는데, 그 사랑의 대상이 '돈', '재물', '명예', '성욕', '권력'이라면 그의 사랑이 '제자 됨의 조건'을 채우는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이 대상이, 그 관심의 대상이 '하느님과 사람'을 향할 때, 비로소 '제자 됨의 조건'을 채우는 사랑이 됩니다. 그래서 마이스터 엑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일에 몰두하되,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도움이 되게 하라. 만일 순수하신 하느님보다 온갖 사물에 더 빠져 있는 자신을 보거든 그 몰두를 검사하라."

그리고 '방편'이라는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방식이 하느님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누가 하느님을,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느님을, 사람을 '소유'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욕구를 채우는 것일 뿐이죠.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내가 행하는 사랑의 방식, 사랑의 방편에 대해 늘 항상 성찰의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던 말이 감기에 걸려 열이 나자, 수건에 찬물을 적셔 말의 온 몸을 닦아 주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아이의 행동을 보고 말했습니다. ‘얘야, 너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감기에 걸린 말을 찬물로 닦아 주면 말이 죽을 수도 있단다.'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시죠? 제가 이 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 기준, 내 방법, 내 경험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는 사랑은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을 오히려 죽일 뿐입니다. 살리려 한 나의 행위가 오히려 그를 죽이는 것이죠. 사랑하기에 그를 향한 ‘나의 시선, 나의 경험, 나의 방법, 나의 힘, 나의 기준’에 대해 혹시 이것들이 사랑하는 그를 죽이는 것이 아닌지를 살펴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내가 사랑하고자 하는 대상이 올바른지, 또 내가 사랑하고자 하는 그 방법이 올바른지를 성찰하며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아멘!




엘 그레코의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1587-1592년. 캔버스 위에 유화, 121.5 x 105cm. 에르미타주 미술관, 러시아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톨레도의 화가’ 엘 그레코(1541-1614년)는 바오로를 주님의 뜻을 실천하고 사랑을 생활화하며 서간을 기술하는 따스한 내면의 지식인으로 묘사하였다. 그의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는 교회의 반석이며 선교의 주보로 추앙받는 두 사도를 소재로 하고 있다. 베드로의 왼손은 커다란 열쇠를 쥐고 있는데, 이 열쇠는 천국의 열쇠로 베드로의 도상적 상징물이다. 그 옆의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집을 의미하는 커다란 책이 그의 도상적 상징물이다. 화가는 이들의 인간적인 풍모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의 신앙을 증언하는 것이다. 왼쪽의 베드로가 흰색의 머리에 나이 들고 겸허한 자태를 보이는 반면, 오른편의 바오로는 열의와 열정에 불타는 젊은이의 모습이라는 대조를 보인다. 경전을 짚은 바오로의 왼손은 신앙복음을 향한 바오로의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며, 오른손의 반을 펼친 손가락은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과 설득을 표현하고 있다. 칼 모양의 각진 귀는 남의 말을 잘 들어야하는 설교자의 본분을 말한다. 그러나 바오로의 희고 밝은 오른손 위에 그 얼굴과 표정, 푸른색 튜닉에 노란 망토가 의미하는 만큼이나 겸허한 복종의 자태로 그려진 베드로의 오른손은 검게 그을린 것이 노동자의 손이다. 이 손은 컵 모양으로 그려져 마치 어떤 생각을 담고 있는 사려 깊고 사색적인 베드로의 내면을 보이고 있다. 엘 그레코는 천국의 문을 열 열쇠가 바로 열정적이며 희생을 전제로 한 사랑의 신앙임을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의 모습을 통해 우리 마음에 새기고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