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브라함신부] 레지오 훈화 76 - 레지오 단원의 충성

[안아브라함신부] 레지오 훈화 76 - 레지오 단원의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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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9 장 레지오 단원의 충성

“자원 단체에서는 충성이 결속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 레지오에서 충성이란 쁘레시디움에 대한 단원들의 충성, 꾸리아에 대한 쁘레시디움의 충성을 비롯하여, 꼰칠리움 레지오니스에 이르는 모든 상급 기관에 대한 충성과 교회 권위에 대한 충성을 말한다. 참된 충성은 단원이나 쁘레시디움 또는 평의회로 하여금 조직의 결속을 해치는 독자적인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의문점이나 애로 사항이 있을 때, 또는 모든 새로운 활동이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는 직속 상급 평의회의 지도와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 P.257

“간부나 상급 기관의 요구가 있을 때, 단원은 자신의 감정, 판단, 독립심, 자부심 또는 의지에 상처를 입게 되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로 순명해야 하는 것이다.” P.258

“간부들이 주회합이나 월례회의 참석 의무를 소홀히 하거나 통신의 의무를 게을리 함으로써 쁘레시디움이나 평의회가 레지오 조직의 흐름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면, 이로써 레지오의 생명선은 끊기고 만다.” P.258

교본은 무리할 정도로 단원들이 상급기관(쁘레시디움, 꾸리아, 꼰칠리움, 교회권위)에 ‘충성’할 것을 강조한다. 요즘처럼, 개인의 자율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시대에 레지오의 ‘충성’ 요구는 시대에 뒤떨어진 논리로 취급되기 쉽다. 그런데도 레지오는 왜 이토록 ‘충성’을 요구할까?

교본 20장 레지오의 조직과 규율에 대해 언급할 때 말했듯이, 하느님을 따름에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에고(ego)이다. 자기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따를 수 없다. 자기를 비워낸 그 만큼의 자리가 하느님의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늘 자기를 비우라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자기 목숨을 당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 제자가 될 수 없다.’(마태 16, 24-28 참조)고 말씀하신 것이다.

에고(ego)를 내려 놓는 확실한 방편이 타자의 기준에 자기를 온전히 내어 맡기는 행위이다. 이를 교회 안에서는 순명이라 한다

상급 기관에 대한 레지오의 충성 요구는 신학적으로 바로 이 순명 정신에 근거한다. 사실, 신앙의 핵심이 ‘하느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에고(ego)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모든 것의 주인으로 내세우려 한다.

사실, 레지오에 입단하면 처음에는 잘 모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한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단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좀 알게 되면, 처음에 가졌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순명하기가 어려워진다. 자기가 속한 쁘레시디움에 대해, 꾸리아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보다 쁘레시디움과 꾸리아의 단점과 장점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가 순명, 곧 자기 에고를 비우는 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단원들이 이 사실을 놓친다. 그래서 자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떠나간다. 떠나면서 지적한 그의 지적이 그를 수도 있고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자기 에고(ego)를 비우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한번 놓쳤다는 것 또한 그가 떠난 이유만큼 확실하다.

지금, 내가 속한 쁘레시디움과 꾸리아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레지오의 이 충성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는가? 혹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잔소리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때로 마음의 불편을 주지만 성모님을 따르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따르고 있는가? 후자가 레지오 단원들의 태도이다. 그렇게 할 때, 내 안의 에고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레지오 단원들은 교본 29장에 나오는 여러 직위에 따르는 충성의 형태에 대해 숙지하여 그 상황이 왔을 때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