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브라함신부] 레지오 훈화 85 - 세상을 본받지 말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

[안아브라함신부] 레지오 훈화 85 - 세상을 본받지 말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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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2항 세상을 본받지 말고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 로마 12, 1

“레지오 단원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께서 바로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마지막 탄식과 마지막 한 방울의 성혈마저 바치셨다는 사실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봉사와 활동 안에 이러한 주님의 모습이 반영되도록 힘써야 한다.” P.30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안에 주님의 모습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교본 4장 2항의 제목이 적힌 로마서 12,1-2을 보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진정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십시오. 이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간하도록 하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세상을 본받지 말고’라는 말로써 그리스도인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모습을 반영하는 삶에 대해 설명한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세상이란 엄밀히 말해서 세상을 지배하는 논리, 원칙을 뜻한다. 세상 그 자체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나서 ‘보시니 좋았다.’라고 격찬한 시공간이다. 문제는 이렇게 하느님으로부터 격찬을 받은 이 세상이 하느님의 논리와 원칙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동성애자의 결혼을 합법화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두 남성의 결혼을 대중매체가 앞다투어 보도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말하며 동성애자의 결혼 합법화를 옹호한다. 그러나 교회는 동성애의 결혼을 반대한다. 그 이유는 결혼의 본질에 생명 출산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동성애자 가정에 입양된 아이가 자기 성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게 될까? 이 생명의 질서를 뒤집는 동성애 결혼 합법화를 교회가 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다른 방법으로 이들의 인권을 존중한다.

이 외에도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움직임에는 성경에 드러난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가르침과 반대 편에 서있는 논리와 원칙이 있다. 이러한 논리와 원칙을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물음은 곧 교본 제4장 2항의 가르침과 연결된다. 세상 안에 주님의 모습이 반영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그리스도인의 회심이라 부를 수도 있다. 회심이란 하느님을 알기 이전, 자신의 삶을 지배하던 세상의 논리, 원칙에서 성경을 통해 알려주신 하느님의 논리, 원칙에로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본 제4장 2항은 무릇 그리스인이란 하느님을 알고 익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여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 태생으로 시인이며 철학가, 평론가였던 폴 발레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의미 심장한 말이다.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믿는 바의 것을 살지 않으면 종국에는 내가 살게 된 것을 하느님보다 위에 놓게 된다. 그 옛날 이스라엘이 그랬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며, 해석한 바를 살지 않으면 세상을 지배하는 논리와 원칙이 하느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따라서 성경 말씀과 교본을 숙독하는 것은 세상 안에 주님의 모습을 반영하기 위한 기본이 되는 요소이다. 이를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