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라파엘신부] 훈화 148 : 세 겹으로 꼬인 줄은

2009년 8월 28일 금요일


세 겹으로 꼬인 줄은


“혼자보다는 둘이 나으니 자신들의 노고에 대하여 좋은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일으켜 준다. 그러나 외톨이가 넘어지면 그에게는 불행! 그를 일으켜 줄 다른 사람이 없다. 또한, 둘이 함께 누우면 따뜻해지지만, 외톨이는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으랴? 누가 하나를 공격하면 둘이서 그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으로 꼬인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코헬4,9-12)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도 장작 하나하나를 따로 꺼내 놓으면 한동안은 저 혼자 잘 탑니다. 그러나 이내 꺼지고 맙니다. 함께 어우러져야 활 활 타오르고 힘을 발휘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활기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와 더불어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 없이 홀로 주님과 결합하려는 경향은 위험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좋은 것은 본받으며 자신을 바라볼 기회를 공동체 안에서 가져야 합니다.

가끔은 “내 주변에 저런 사람만 없다면 더 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고 또 깨어 있으면 그를 통해서 내가 더 큰 은총을 입게 됩니다. 어떤 때는 좋은 결심을 하고도 지속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것은 나약한 의지의 문제도 있지만 혼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하면 쉽게 그만두는 일은 하지 않게 됩니다.

"혼자만 잘하면 되지!"라는 생각은 이기적입니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 성당에 나가지 않는다. 신심단체의 활동을 그만두었다. 대신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미사에 참석하고 유명한 강사들의 훌륭한 강론을 즐겨듣는다.’라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 겹으로 꼬인 줄이 쉽게 끊어지지 않듯 공동체와 함께하는 신앙생활이 튼실한 믿음을 키워준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한 몸 안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지체가 모두 같은 기능을 하고 있지 않듯이 우리도 다양한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로마12,4-5)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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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의 <목동들의 경배>, 1482-85, Panel, 167 x 167 cm, Santa Trinità, Florence

이 작품은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화가 중의 하나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가 그린 <목동들의 경배>이다. 이 작품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내용으로 중앙의 성모 마리아, 성요셉, 아기예수가 위치해 있고 제목의 핵심인 우측에 자리한 세 목동들이 예수님께 경배하고 있다. 좌측상단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오는 긴 행렬들과 그 주변 풍경이다. 주목할 것은 이 작품에서 작가는 미적 가치보다는 인물들의 영혼의 상태, 감정 등을 나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른쪽 목동들 속에 자화상을 그려 넣었는데 무릎 꿇은 두 사람 중 왼쪽이 화가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