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인사목 반세기, 깊은 정 들었어요”

로랜하이츠 성마리아 엘리자벳 성당 주임 명프란치스코 신부(본명 프랭크 매니온·75)가 오는 21일로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는다.

아일랜드 출생의 명 신부는 25세 나던 1952년 12월21일 신부서품을 받고 휴전 직후인 1953년 12월 골롬반선교회 일원으로 한국에 파견된 후 한국에서 25년 그리고 남가주 한인사회에서 25년 등 도합 50년의 목자생활을 한국 사람들과 함께 보냈다. 전후 폐허 속에서 재건의 기틀을 잡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한국인들을 위해 정신적, 물질적 지주 역할을 했고 낯설고 물 설은 미국 땅에서 고생하는 한인 이민자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부모 밑에서 어려서부터 땀 흘려 농사짓고 수확하는 삶의 기쁨을 터득했다. 지금도 자신이 “사제의 길을 택하지 않았더라면 농부가 됐을 것이 틀림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의 고향 걸웨이 주민은 100% 가톨릭이었다. 4명의 이모가 모두 수녀였고 바로 위 형도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다니던중 사고로 죽었으며 여동생 2명이 수녀다. 그중 한 명은 한국에서 37년째 간호선교를 하고 있다.

명 신부의 한국말은 50년 경력에 비춰볼 때 유창한 편은 못된다. 전쟁 중에 많은 신부들이 죽고 납치 당해 사제가 부족했던 터라 불과 3개월 한국말 공부 끝에 강릉 임당동성당 보좌신부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1965년 서울로 올라와 돈암동 성당 주임사제를 맡았던 명 신부는 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 따라 서울의 급성장과 더불어 교회 부족 현상이 빚어지자 성당 건립에 앞장서 마천동, 등촌동, 면목동, 목동, 성남 천주교회 등을 건축했다. 70년대 한인들의 이민 물결에 따라 미국내 한인 가톨릭신자도 크게 늘어나면서 미국 교구에서 한국말을 하는 사제의 파견을 한국 천주교측에 요청해온 것이 계기가 돼 1978년 10월 미국에 왔다.

오렌지카운티 순교자 성당에서 11년간 사목을 한 명 신부는 안식년을 거쳐 두 이모들이 수녀로 일생을 보냈던 달라스의 한인성당에서 1년반 사목을 한 다음 미국 교구로 옮겨 일했으나 한인 신자들이 몰려오는 바람에 다시 한국말 예배를 맡게 됐다. 그때가 1995년 2월이었는데 이듬해인 1996년 7월 성마리아 한인천주교회로 독립해 로랜하이츠 알바라도 중학교 강당을 빌려 한국어 미사를 드리다가 1998년 로랜하이츠 고교 앞에 터를 구입했고 지난해 7월 성전을 지었다. 지난주 미사에 참석한 신도수는 650명, 주일학교 100여명을 포함하면 750명의 큰 규모다.

그가 길러낸 사제들도 적지 않다. 첫 부임지인 강릉 임당동 천주교회 시절 7세 어린이였던 오영민은 지금 북가주 오클랜드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주임사제, 1978년 순교자 성당에서 9학년 학생이었던 김알렉스는 현재 성토마스 성당의 주임사제고 김로이 신부, 하알렉스 신부 등도 제자들이다.

성마리아 성당의 추토마스 사목회장과 서마리스텔라 수녀는 명 신부가 “신자들이 선물이나 옷을 가져오면 이를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낡은 옷에 검소하게 살아가는 청빈한 사제며 성품이 온화하고 특히 한국인을 사랑하는 분이기 때문에 신자들이 많이 따른다”고 입을 모은다. 사제관으로 명 신부를 찾아 금경축을 맞는 심경을 들어봤다.

사제서품 50주년이란 김수환 추기경도 지난해에야 맞았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고 특히 일선 신부로 활동하며 맞는 일은 드물다는데 50주년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교우들이 그냥 지나갈 수 없다고들 해서 할 수 없이 기념 책자를 출판하기로 했지만 숫자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50년 동안 목자 일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릴 따름이다.

75세의 고령인데 은퇴는 언제쯤 할 계획인가

-건강이 허용할 때까지 계속 일할 생각이다.

한국에 파송된 계기는

-신부서품을 받고 골롬반선교회 일원으로 외방선교를 명령받았다. 원래 중국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중국의 공산화로 말미암아 한국으로 변경됐다.

한국에서의 선교가 힘들지는 않았는가

-한국은 불교의 뿌리가 깊은 나라로 한국 사람들의 종교에 대한 의식과 관심은 다른 나라에 비해 수준이 높은 편이다. 종교에 대한 의식은 기독교나 불교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한국 사람들은 또한 정이 있는 민족이다. 당시 지도하던 고등학생들로부터 한국말을 배우고 나는 영어를 가르쳐 주며 친하게 지냈는데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는 이들이 10여명이나 된다.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가 다 됐지만.

신도들이 주는 선물이나 돈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줘 버린다고 하는데

-신부, 특히 노인에게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우리가 어릴 적에는 가난했기 때문에 돈을 쓰는 일이 없었고 그런 습관이 몸에 배었다. 한국 노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즈음 아일랜드에 가보면 젊은이들 돈을 물쓰듯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된다. 한국 젊은이들도 비슷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소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경제활동도 원활해지지 않겠는가. 요즘 젊은이들을 우리와 비교할 수는 없다.

50년 사목 활동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떤 신부가 50년 중국선교를 마친 후 쓴 책을 읽었는데 “좀 더 열심히 선교를 하지 못한 일을 후회한다”고 했더라. 나도 같은 심정이다.

신도들에게 들려줄 말씀은

-축하드린다, 미국 땅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에게. 하느님을 잊지 말아라. 아무리 부를 이루었다고 해도 하느님을 잊고서는 행복할 수 없다.

원링크 : http://news.koreatimes.com/article/103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