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신자가 질문하고 가톨릭 신자가 답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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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loadimage질문1:.

저는 개신교 신자입니다. 개신교 신자인 제가 집착하는 것중에 십자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라는
사도신경의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의 부활로 인해 우리의 끝없는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며
영생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셨습니다. 이 부분은 어느 부분보다 가장 중요한 진리이지요.

이런 예수님을 상징하기에 개신교에서는 십자가만 남겨두었지만,
카톨릭에서는 아직도 예수님의 고난이라는 부가적인(너무 단순화했다면 죄송합니다)
끔찍한 모습을 넣어두고 있을까요? 이 부분은 왜 바꾸지 않는건가요?

Uploadimage답변:

우선 이렇게 개신교 신자와 성경에 대해, 또 서로간의 교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개인적으로 기쁜 마음을 전합니다.
타종교를 이해하는데 우선해야 할 것은 서로 다른 종교에 대한 고유성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가톨릭 교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대해 어느 정도 배우신 후에 토론하는 것이
가톨릭 교회을 이해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개신교의 성경과 교리로는 가톨릭 교회는이해할 수 없는 의문 투성이의 종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후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대해 공부해 보시길 권하며... 부족하나마 제가 아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가톨릭'은 '카톨릭'이 아니고 '가톨릭'(catholic)이 정식 명칭입니다.
'일반적, 보편적’이란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정통한 신앙을 전하는 교회이며, 또 사도로부터 이어온다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구별되는 '로마 교황청 중심의 교회와
이에 속하는 신자를 뜻하는 공식 명칭'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신자이며, 가톨릭(천주교)신자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가톨릭에서 중요시 하는 것이 칠성사 입니다.(7가지라고 해서)
일곱 가지 성사에는 세례성사, 견진성사,성체성사,고해성사, 병자성사,신품성사, 혼인성사등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톨릭의 가장 핵심은 미사인데 이는 예수님의 최후 만찬석상에서 하신 유언을 그대로
현재에도 그대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 하면 예수님은 구약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렇게 할려고 오셨숩니다.

구약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집트에서의 탈출입니다.
여기서 모세가 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다면 신약에서의 탈출은 죄에서의 탈출입니다.
이 역할을 예수님께서 담당하셨지요.. 이를 '빠스카'라고 부름니다. 그래서 미사를 '빠스카 제사'라고 합니다.
해방절이라고하지요, 신약에서는 죄에서의 해방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에 쓰디쓴 나물을 먹고 양을 잡아 먹으면서
이집트에서의 탈출 사건을 상기하며 그 이야기를 후손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양을 잡을 때에는 양에게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우고 피를 이마에 바리고
내죄를 이 양이 뒤집어 썻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내장을 전부 빼내어 불살라 버리는 번제물로 바치고
양은 양가죽을 분리해서 장대에 달아서 매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야 오랫동안 보관하고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때 양은 뼈가 하나도 손상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와같이 예수님도 십자가에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은채 매달려 계셨습니다.

탈출기12장 46절: "어느 집이든 한 집에서 먹어야 한다. 고기를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안 된다.
뼈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민수기 9장 12절: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되고, 뼈를 부러뜨려서도 안 된다.
파스카 축제의 모든 규정에 따라 그것을 지내야 한다."

이런 규정에 따라 예수님은 자신이 희생양이 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예수님은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다 라는 것은 이와같이 구약에서 희생양이 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집어 쓰시고 죽으셨습니다.
구약의 희생양처럼 말입니다. 말로서가 아니라 진짜 희생양처럼 아무 말없이 끌려 가신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대로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았다 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요한복음 19장 36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 복음서에서 1장 29절:"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유언이라도 하듯이 최후의 만찬에서 유언을 남기십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님의 명령이십니다.

루카복음22장 14절~23장 20절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그리고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이것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구약에서 희생양으로 죽은 양들처럼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희생으로 죄를 뒤집어 쓰고 죽은 예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매일 기념하는 것이 가톨릭미사입니다.

Uploadimage질문2:

개종하기 싫은 이유중에 성모마리아에 대한 질문입니다.
왜 가톨릭은 성모마리아에 대해 많은 집착을 갖는지 의문입니다.

Uploadimage답변:

1.하느님은 인간의 허락없이 맘대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만일 하느님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원하신다면 우리는 그냥 맘대로 죄짓고 해도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은 재수가 좋아서 예수님이 점 찍듯이 구원해 준 걸까요?
누구는 구원 받고 누구는 아니고?? 그럼 너무 불공평한 게 아닌가요?

2.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지었을 때 바로 구원해 주었으면 인류가 죄도 안짓고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죄악도 별로 없었을텐데 왜 4000년을 기다렸다가 예수님이 오셨을까요?
성모님은 운이 좋아 예수님께 점 찍혀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역할은 구약에서 부터 예언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3.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잘 아시는 대로 성모님을 통해 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들을 성모님 뜻과는 상관없이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은 성모님의 "예" 라는 순명에 의해서 탄생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와의 불순으로 하지 말라는 짓을 한 죄, 이와 대변되는 하느님께서 명하시는 일에
그저 순명하신 성모님은 대비됩니다. 이 성모님의 "예" 라는 순명이 그렇게 중요하냐면 그렇습니다.
하와가 불순명으로 죄가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의 "예" 라는 순명으로 이 세상에 구원이 들어왔습니다.

성모님의 "예"는 단 한마디에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전 생애가 걸린 아주 중대한 사건입니다.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이 성모님의 "태" 만 빌려서 태어 났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모님은 허수아비였을까요? 그러다면 왜? 굳이 성모님이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성모님은 아무 느낌도 고통도 모르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4.지금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로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그 길에 잘 순명하는 사람은 성모님처럼 승천할 것입니다.
성모님은 최초로 예수님을 영접하신 분이시니까요.

5. 성모님께서 하신 그 "예" 라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즉 크리스찬이)되는 길입니다.
그 길은 험난합니다. 성경은 계속 증언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처럼 성모님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6. 그리고 우리는 자기 멋대로 살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가장 예수님의 말씀이 충실하게 산 사람이 누구일까요?
인간이 과연 예수님의 말씀에 "예"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7.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 인간의 뜻과 상관없이 하느님 맘대로 구원하신 걸까요? 아니면
죄인인 우리 인간의 의지와 뜻대로 하신 걸까요? 이게 답인 것 같습니다.

Uploadimage질문3

개종을 해야 하나요?
개신교가 정경내용만 제외시켰다는 것만 이상하게 생각되어지지 돌아가는 시스템은
다른 나라에서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가 예수그리스도의 믿음을 키워나가기 좋다고 생각되어집니다

Uploadimage답변:

가톨릭 신자분들 중에 저와 의견이 다른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개신교 신자들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십일조에 대한 신자들의 열성과 선교에 있어서의 적극성 정도입니다.

그러나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에서의 실천이라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은 예수님믿고 구원받았다고 "아멘"소리 내고 하는 것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기초적인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어린 신앙에 묶여 있어야 하나요? 예수님의 11 제자는 모두 순교했습니다.
스테파노까지 12명이군요.. 그리고 그 외에도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몸으로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믿음은 증거를 기본으로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나온 말씀 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에 대해 엄청난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는 아예 누가 나의 이웃인지 까지 설정해 주며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에서는
가장 미소한 자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라며 영원히 불타는 곳으로 가라고까지 나옵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이렇게 성인처럼 사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단지 드러내지 않고 희생과 봉사로 사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겉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입니다.
세상의 칭찬보다는 하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적인 것들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살아가시는 신부님, 수녀님들이 좋은 보기입니다.
물론 평신도 중에서도 수도자들 못지않게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며 사시는 분은 많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사셨던 성인들 중에 '마더 데레사. 콜베신부님,
우리나라의 김대건 신부님,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친 무명 순교자들..등등
또 현재에도 많은 신부님 수녀님들, 신자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런 삶을 살고 계십니다.

Uploadimage질문4.

다른나라의 개신교는 외경(제2의정경)을 부록처럼 넣어놨다는데 한국은 왜 그렇게 수정하지 않나요?

Uploadimage 답변;

다른 나라라도 모든 나라는 아니고요..
일부 개신교에서 자신들이 믿는 성경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문제입니다.
개신교는 그 교파가 많아서요,, 교파통일을 이루려는 교파에서는 외경을 부록으로 뿐 만아니라
아예 성경에 넣어서 읽는 곳도 있구요.. 어떤 곳은 더 심하게 자기 성경 아니면 모두 가짜라고 하는 데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서로 다른 종교의 고유성을 존중해주는 그런 참 신앙의 모습이 아쉽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경을 계시된 교의의 원천이며 신앙의 원리를 가르치는 근본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성전을 통하여 신앙을 이어받은 교회는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정의하며
성경들의 정경(Canon)을 결정하였습니다.

결국 성경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과 인류에 대한 당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이를 당신의 감도(感導)를 받은 자로 하여금 기록하게 한 책입니다.
이 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행적을 인간의 안목으로 해석하고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기본적인 규범과 표준을 내포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가톨릭에서는 73권(구약 46권,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66권으로 하고, 나머지 7권은 외경(外經)이라 하여,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설명 또는 해석은 아무나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어떤 일정한 규칙을 따라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성경 해석 방법론입니다. 이 방법론은 성경 해석의 필요성 때문에 생긴 것이며,
이에 대한 고찰은 방법론의 역사 서술과 방법론 자체에 대한 분석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후,종교간 일치 운동에 힘입어 1968년 개신교와 가톨릭의 양측간 공동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8년 후 1977년 부활절에 공동 번역 신구약 성경을 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측 일부에서는 교리적, 해석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며 통렬히 비난했고,
가톨릭측에서도 외경이라는 명칭을 제 2경전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지요.
비록 첫 의도대로의 결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상 교회 일치 운동이 거둔 큰 성과이며,
이해하기 쉬운 현대문의 성서를 보급했다는 데에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이 충분했는지요..하느님 사랑안에 항상 기쁨이 넘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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