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브라함신부] 사순 제1주일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사순 제1주일

신명기 26,4-10
로마서 10,8-13
루카복음 4,1-13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사순 제1주일

신명기 26,4-10
로마서 10,8-13
루카복음 4,1-13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저는 사막이 좋습니다. 아마도 부제품을 받고 간 첫 성지순례 길에서 받은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다 삼키고도 남을 만큼의 사막의 적막이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졌기 때문인가 봅니다. 지금도 그 느낌 때문에 사막을 좋아합니다.

사막 그리고 광야 …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막은 상징적 의미가 많은 곳입니다. 모세가 불붙는 떨기나무 모양을 취하신 하느님을 만난 곳도, 십계명을 받은 곳도 사막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야훼 하느님을 만난 곳도 사막이었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곳도 사막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막은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거룩한 장소’요,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뵙는 만나의 장소’였습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막은 ‘정화의 장소’였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400여 년을 살며 그들 몸 깊숙이 밴 이방 문화와 이방 경신례를 정화시키는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막을 지나면서, 뜨거운 기온과 목마름, 배고픔과 쉬지 못함 때문에 모세에게 대들고, 하느님께도 대들며 불평하고 힘들어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집트로 돌려보내 줄 것을 모세와 하느님께 탄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막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나안 땅에 들기에 합당한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집트에서 40일 정도면 충분히 당도할 가나안 땅까지의 여정이 40년이 걸린 이유도 이런 정화의 과정 중 하나였습니다. 민수기 9장 18절은 특별히 이 정화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구름이 성막 위에 내려앉은 동안 내내 그들은 진을 치고 살았다.”

그러니까 구름이 반나절만 내려앉으면 반나절만 한 달이나 두 달 동안 내려앉으면 그 기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머물렀다는 뜻입니다. 그들 스스로 시간을 정하여 여정을 한 것이 아니고 하느님에 의해 여정이 이뤄졌음을 말합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고, 떠날 준비가 다 되었는데 떠나지 못하는 심정! 이것 자체가 수련과 정화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땅의 노예라는 신분에서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40일 동안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던 광야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구약의 사막이 ‘야훼 하느님의 현현(顯顯) 장소’요, ‘이스라엘 백성의 정화(淨化)’를 위한 장소였다면,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지내셨던 광야는 ‘유혹자인 악의 실체를 꿰뚫어보고, 악을 정복하고 극복하는 장소’가 됩니다.

어떻게 광야가 '악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장소'요, 동시에 '악을 정복하고 극복하는 장소'가 될 수 있는가?

이에 관해서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 접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냐시오 영신 수련 30일 대침묵 피정, 예수 마음 호칭 40일 대침묵 피정, 성령세미나 8주 과정, 기타 여러 가지 교육이니 피정을 가면 평상시와는 다른 분위기, 다른 식생활, 또는 집과는 다른 기도 분위기, 함께한 이들의 신앙 열정… 이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강한 영적 체험과 영적 식별의 눈을 갖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 영적 체험과 영적 식별의 눈을 갖고 일상에로 돌아오면(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체험과 영적 식별력이 차츰 사라지지만) 일상의 조건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삶을 바라보고 대하는 내가 변화된 것을 체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 주요 원인은 성령의 이끄심이지만 동시에 평상시와 전혀 다른 조건과 상황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도 평상시 당신이 지내시던 생활환경과는 전혀 다른 조건과 상황인 광야에서 40일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유혹자를 알아보셨고 그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드셨습니다. ‘40일 동안의 광야 생활’ 중, 예수님의 하루 일과가 어떠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성경은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증언할 뿐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평상시에 즐겨 하던 것을 끊고 극한 고행을 하셨다는 겁니다. 평상시보다 더 많은 기도, 더 많은 절제, 더 많은 보속… 그리고 더 자주 하느님의 말씀을 접했을 겁니다. 그런 생활 끝에, 예수님은 당신께 다가온 이가 유혹자라는 것을 금방 알아채셨고, 유혹자의 절묘한 속임수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유혹자를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드십니다.

‘사순시기’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보내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교회가 제정한 영적 정화의 시기입니다. 습관적으로 행했던 나의 생활을 잠시 떠나보내고 절제와 희생, 인내와 극기라는 방편을 통해 영적 성장의 시기를 갖는 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사순시기’를 보낼 수는 분명 없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있지 않고 세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교적 경신례라는 이름으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평상시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평상시와 달리, 좋아하는 음식을 절제해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와 달리, 교회가 거행하는 전례에 더 자주 적극적으로 참례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와 달리, 술의 양을, 담배를 피우는 횟수를, 수다를 떨며 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횟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누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지금의 시기는 종교적으로 내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께서 40일간 단식과 기도로 보낸 시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또한 그 모범을 따라 40일간을 절제와 희생으로 보내는 시간이다’라고 말하기에 참 좋은 때입니다.

믿는 이의 영적 유익을 위해 교회가 제정한 이 ‘사순시기’를 잘 활용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우리를 영적으로 정화시켜 주어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며, 일상생활 속에서 나를 유혹하는 유혹자를 알아채고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는 ‘46일의 광야 체험’인 ‘사순시기’를 유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46일의 사순시기가 끝났을 때, 여러분 모두가 눈 맑고 귀 밝은 이가 되어 하느님을 찬미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모레토 다 브레시아의 <광야의 그리스도(Christ in the Wilderness)>, 1504년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짐승들 중 수사슴이 그리스도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해준다. 시편에는 하느님을 찾는 영혼을 개울을 찾는 수사슴에 비유한 구절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세의 동물 우화집에서 수사슴은 샘물의 물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뱀의 독에 저항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게 귀의함으로써 악의 유혹에 저항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천사들은 그리스도가 40주야 동안 광야에서 단식할 때나 악마의 유혹을 받았을 때 나타나지 않고 전체 이야기가 끝날 때에만 나타난다. 뺨에 손을 대고 있는 자세는 전통적으로 고독과 깊은 명상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