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8주일 강론

찬미 예수님! 형제자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10월 둘째 주일입니다. 사람이 맑고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이 안정된다고 합니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또 복음은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의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온라인으로 청첩장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 명함처럼 만들어서 청첩장을 돌리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끝에는 반드시 계좌번호를 넣는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기로 결심한 독신주의자들도 ‘비혼 선언식’을 한다고 초대장을 돌린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지인 및 친구들에게 축의금을 했는데 자기만 혼인을 안 하면 돌려받을 길이 없으니까 ‘비혼 선언식’을 해서 한마디로 수금(收金)을 하겠다는 겁니다.

예수님 시대에 혼인 또는 잔치에 초대할 때에는 두 차례의 초대가 있어야 비로소 정식으로 초대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초대는 예비 초대이며 예의상의 초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초대는 실제로 잔치 준비를 해놓고 꼭 와달라는 초대입니다.

오늘 복음에 4절에 다시 종들을 보내며 초대하는 장면입니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두 번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초대에 무관심, 폭력, 귀찮게 여김, 적개심, 경멸 등의 태도를 보이며 거절한 이들이 있습니다. 두 번의 초대에 거절하는 것은 잔치의 주인인 임금을 모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유대인들의 원로와 바리사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배척하고 초대를 거절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앞날을 내다보시며 탄식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의 운명은 비참하게 됩니다. 서기 66년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인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폐허로 만들고 예루살렘 성전을 불살라 버립니다. 오늘 마태오복음 22장 7절에 나오는 내용은 이런 미래를 아시고 말씀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 1독서 이사야 25장에서 전하는 말씀도 하느님께서 잔치를 베풀어 주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하느님께 희망을 걸었던 이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셔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충실하게 응답하느냐? 하는 문제는 『예복』을 갖추어 입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마태오 복음에 비추어 보면,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 산상설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빛과 소금이 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7장),
  •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함으로써 하느님과 영적인 가족이 되는 것,
  •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찾는 것,
  • 하느님의 의로움, 자비, 신의를 행하는 것(마태 23,23)

을 의미합니다.

혼인 잔치가 준비되었는데 초대에 응답하지 않는 자들이 많아서 임금은 종들에게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잔칫방은 손님으로 가득 찹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자격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예복을 갖춰 입는 것』입니다.

장례미사나 사도예절을 거행하다 보면, 어떤 확신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분은 참으로 모범적인 신앙인으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평생 헌신·봉사하며 사셨고, 하느님께서 이분에게 천국을 선물로 주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신앙인입니다.

『예복』은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드러나는 한 영혼의 전체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라는 오늘 복음 끝부분의 말씀을 우리가 현세의 삶을 보다 더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사제 성소나 수도자 성소에 있어서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둘째는 부르심을 받은 이의 지속적이고도 충실한 응답의 연속입니다. 셋째는 교회의 복음 전파를 위하여 또는 하느님 나라를 증거 하는 삶을 위하여 교회(수도회)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성장함으로써 선택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가는 것은 믿음을 갖고, 한 세상을 충실하게 살았던 한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느님의 최종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버리고, 예수님을 닮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은 그 삶 자체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하나의 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 독서 필리피서 4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진정한 사도의 삶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임을 의식하고 하루하루 성실한 삶을 통하여 예복을 갖추는 참 신앙인이 되기로 결심합시다.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다가 억울한 일을 겪더라도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실망하지 않고 희망합니다. 아쉬움을 채워주시는 잔치의 주인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잔치인 성체성사의 식탁 에로 나아갑시다!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