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일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6년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면서 제정한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이날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의 모범을 보여 주신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와 연대, 형제애를 실천하도록 일깨우고 촉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 12-14)
내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두고 갚을 수 없는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었을 때 나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제가 청주시내 어느 본당신부로 있을 때, 60대 초반의 아저씨 한 분이 일 주일 혹은 이 주일에 한 번씩 성당에 들러 초인종을 누르고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제가 그분을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고 은총이었습니다. 그분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오히려 도움을 드린 날은 행복하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탈렌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먼저, 화폐단위를 좀 정리해 보고 넘어갑시다. 탈렌트의 비유(마태 25, 14-30), 미나의 비유(루카 19,11-27), 데나리온(루카 20, 24), 렙톤(루카 21, 2), 콰드란스, 세켈, 앗사리온(Ασσαριον)1/16데나리온), 드라크마 등이 나옵니다.
렙톤 : ‘적은’이란 뜻으로 그리스 화폐 중 가장 작은 단위. 2렙톤이 1콰드란스.
콰드란스 : 로마시대 동전 중 최소단위. 3.5g으로 오늘날 천원이 좀 안됨.
1드라크마 : 드라크마는 ‘움켜쥐다.’라는 뜻으로 그리스의 은화(4.3g)로 로마의 은화 1데나리온과 같음. 노동자 1일 품삯.
1데나리온 : 로마의 은화로 노동자의 하루 품삯, 로마 병졸의 1일 급여.
1미나 : 100드라크마와 같으며 노동자의 100일 품삯.
1세켈 : 노동자의 4일치 품삯. 은 15세켈은 금 1세켈. 1/2세켈은 2드라크마.
1탈렌트 : 노동자의 6,000일치 품삯. 1탈렌트는 6,000데나리온.
오늘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깁니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각가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납니다. 한 탈렌트만 해도 엄청난 거금입니다. 한 탈렌트가 6,000일 동안의 장정의 품삯이니까요. 하루 일당 × 6,000 하면 답이 나오죠. 여러분! 일당 얼마예요? 일당이 200불이라면 120만불. 100불이라면 60만불 이란 큰 돈이에요. 다섯 탈렌트는 600만불, 300만불이겠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거금과도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를 통해서 당신의 생명과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를 구원에 참여하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맡기고 “오랜 뒤에(많은 기간) 종들의 주인이 와서 셈을 하게”(마태 25, 19)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종말이 곧 임박할 것이라는 임박종말설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종말은 천천히 올 것이라는 지연종말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장차 주인이 오게 될 때에 얼마나 작은 일에 충실하고 성실했느냐에 따라서 심판이 이루어질 것임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1) 첫째 종과 둘째 종은 주인에 대한 신의를 지니고 주인이 맡긴 돈을 잘 활용하여 큰 돈을 벌어들이는 매우 생산적인 활동을 하였습니다.
2) 셋째 종은 주인을 모진 분으로, 심지 않는 데서 거두시는 분으로, 뿌리지 않는 데서 모으시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주인에 대한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며 주인을 불신하여 매우 비생산적으로 인생을 낭비한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다섯 탈렌트를 받은 첫째 종이 다섯 탈렌트를 더 벌어들여 주인으로부터 작은 일에 착하고 성실한 종으로 칭찬받았다는 것과 두 탈렌트를 받은 둘째 종이 두 탈렌트를 더 벌어들여 역시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성실한 종으로 칭찬받았음을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일을 맡기고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 받는 최종적인 구원과 축복을 받았음을 들었습니다.
반면에 셋째 종은 한 탈렌트를 땅에 숨겨두었다가 주인에게 드렸고, 악하고 게으른 종, 쓸모없는 종으로 판결받아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지는 불행을 겪게 됨을 들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 속에서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오늘 하루 작은 일에 성실히 하며 살아왔는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고 희망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왔다면 그래서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며 살았다면 주인이 오실 때에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불신하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린 악하고 게으른 삶, 자비를 외면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주인으로부터 무자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한 심리학자가 실험을 하였습니다.
가짜 회사를 만들어 신입사원을 100명 모집하였습니다. 그리고 학력불문, 남녀불문, 외모나 체격 등 불문하고 주급으로 매주 150만원씩 주겠다고 광고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응시했고 5천 명이 넘는 사람이 왔는데 그중에 제비뽑기식으로 100명을 뽑았습니다. 그들에게 맡겨진 일은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5시 퇴근하기까지 흰 백지에 점을 따라서 좌우로 줄을 그으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책임량도 없고, 그저 열심히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처음엔 신나게 일을 했고, 일이 너무 쉽다고 생각했고,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었고, 직장 동료와 갈등할 일도 없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4일째부터 변화가 생겼습니다. 몇 사람이 사장한테 찾아가 따졌습니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땅 파는 일이나 쓰레기 줍는 일을 시키십시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줄 그을 종이가 필요하면 인쇄해서 쓰십시오. 그리고는 사장실 문을 뛰쳐나가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결국 100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몇 주일 못 가서 다 그 직장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단순하고 쉬운 일에 급여도 많이 주는데 직장을 떠났을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자기가 하는 일에서 의미나 보람을 찾지 못하면 힘들어한다는 것이고 결국 그 일에서 떠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회심리학자 존 W. 매슬로우는 행복의 네 가지 차원을 말하는데, 그중에 정신적 차원의 행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곧 사람은 의미와 보람이 있는 일을 함으로써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탈렌트의 비유를 들으면서 착하고 성실한 종이 되어 주인의 기쁨과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주어진 하느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고자 내가 해야 할 작은 일에 성실히 임하는 종으로 살아갑시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