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1주일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은 교회력으로 새로운 해, 나 해의 시작인 대림 제1주일입니다.

교회는 대림 시기에 주님의 첫 번째 내림인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세상 종말에 다시 오시어 인류를 심판하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늘 깨어 준비하라고 당부합니다.

대림 시기엔 제대 앞을 대림환으로 장식합니다. 4개의 초는 4천 년 동안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려온 구약시대를 회상하면서 다가오는 성탄 축제를 회개의 보속의 생활 속에서 희망하며 기다리도록 준비시킵니다. 짙은 보라색에서 연한 보라, 분홍, 흰색의 사색 초는 우리의 영혼이 정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푸른 잎의 장식은 생명이신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희망을 표현하며 둥그런 환의 모양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함을 상징합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는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불러주셨고, 그분이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코린토는 그리스 북동쪽의 부유한 항구도시입니다. 두 개의 항구를 지닌 그리스 최대의 상업이 발달한 도시로 물자가 풍족하고 풍요로운 도시였고, 철학사상이 발전됐으나 윤리적으로는 방탕한 생활이 만연된 타락한 경향이 두드러진 도시였습니다. 은유적인 표현으로 “코린토식으로 산다.”라는 표현은 “방탕하게 산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바오로 사도는 세속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희망하면서 그분의 은총으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올바른 영적인 태도인 “깨어 있음”을 실천하면서 흠없이 살아가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역시 경제적으로 발전된 도시이면서 일등놀이에 몰두하고 돈만 아는 사회, 성공지상주의와 이기심이 뒤덮는 도시는 희망이 없는 도시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 안에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이고 감사할 일인지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제1 독서 이사야 63장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유대 민족이 하느님의 의로운 길을 즐겨 걸으며 하느님을 기억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일 하느님을 경외할 줄 모르는 민족이 되었다면 하늘을 찢고 당신의 백성을 찾아오시길 당부드리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사야의 신념을 이어받아서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희망합니다. 참으로 은총의 힘은 놀랍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님의 은총만을 믿습니다.”-꾸르실료 수료식)

1) 은총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으며 그리스도와 사귀며 살아가게 합니다.

2)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풍요로운 은총의 선물을 잘 선용하면 삽시다.

3)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깨어서 살아갑시다.

때때로 우리가 맘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어둔 밤의 시기에 빛을 주시는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고통의 시간, 시험의 시간, 의심이 드는 시간, 도둑이 닥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빛이신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대낮의 자녀입니다.”(1 테살 5, 5 참조)

힘겹고 어려운 시간엔 그리스도께 매달리고 기도하자! “당신께 비는 누구에게나 진정으로 비는 누구에게나 주님은 가까이 계시나이다.”(시편 145, 17)

대림 시기는 기다림의 시기입니다. 기다림은 희망의 발로입니다. 기다려 봅시다. 우리 주님이 오심을 기다려 봅시다. 그분은 말씀, 성체, 위로, 평화, 기쁨으로 우리에게 오고 계십니다.

기다림을 아주 잘 실천해서 황제가 된 인물이 있습니다.

독일에 ‘바바리아’라는 성에 ‘루드비히’라는 공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포악하기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안에 사는 이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어느 날 공작이 사냥을 나갔습니다. 공작은 사냥하던 중 숲속의 한 작은 성당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제대 앞에 앉아 오랜만에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성당 벽에 어떤 글씨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나 일이라 앞부분만 기억이 났습니다. 삼 일인지, 삼 개월인지, 삼 년인지 아무튼 그 안에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죄를 많이 지었던 공작은 나름대로 해석하기를 삼 일 안에 하느님 앞에 서게 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바로잡고, 삼 일간 아내와 성안의 백성들에게 잘해 줍니다. 죽어서 하느님의 심판대에 설 생각을 하면서 모두에게 마음을 다했습니다. 삼 일째 되는 날 높은 탑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공작은 생각하였습니다. 삼 일이 아니라 삼 개월이었나 보구나. 그래서 그는 삼 개월 동안 가족들과 백성들에게 최선을 다하여 잘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삼 개월이 지났어도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작은 아! 삼 개월이 아니라 삼 년이었나 보구나. 그래서 그는 삼 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고 가족과 백성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나팔 소리가 울리면서 독일 왕실에서 사절단이 도착했습니다. 바로 루드비히 공작을 독일의 황제로 모셔가기 위하여 왔던 것입니다. 삼 일, 삼 개월, 삼 년을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여 충실히 살았던 공작의 훌륭한 모습이 독일 전역에 소문이 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공작이 독일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선행과 성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황제가 된 공작의 새 삶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공작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하느님의 심판을 깨어 기다린 준비성』 때문이었습니다.

대림 시기를 잘 보냅시다. 성경 읽고, 묵상하고, 실천하며 마음과 신앙을 잘 정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