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01172023

뿌리 얕은 나무도 흔들리지 않는다. (함께하는 나무 공동체)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리며”라는 <용비어천가> 중의 한 구절이 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가뭄을 안 탄다.”라는 속담도 있다. 뿌리가 땅속 깊이 있어야 비가 오지 않고 가물다 해도 시들거나 말라 죽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뿌리가 깊지 않아도 가뭄을 타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을뿐더러 세계에서 제일 크고 높음을 자랑하는 나무가 있다면 믿겠는가? 그것도 한 점 구부러짐도 없이 똑바르게 자라고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그리고 불이 난다 해도 쉽게 죽지 않는 나무가 있다면 믿겠는가? 게다가 곰팡이나 벌레나 부식에도 강해서 옥외 마루나 담장으로 요긴하게 쓰이고 색깔도 아름답고 목질도 부드러워 가공물에도 귀하게 쓰인다고 한다. 바로 이 나무가 미국 서부에서 세계 최대의 부피와 크기를 자랑하는 ‘레드우드’이다. 이 나무는 보통 100m 이상 자라고 밑동의 지름은 10m 를 넘나드는 것이 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나무의 뿌리가 크기와 부피에 비해 깊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2m나 3m로 짧게 땅 밑으로 뻗어나갈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100m 이상의 키와 엄청난 부피를 겨우 2~3m 정도의 뿌리로 지탱할 수 있을까? 그것도 한 점의 구부러짐 없이 말이다.

레드우드가 이렇게 자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가족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자라기 때문이다. 땅 밑으로 뻗지 못하는 대신 옆으로 25m를 뻗으며 한 뿌리에서 여러 그루의 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즉 한 뿌리에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보통 나무는 큰 가지들이 땅 위의 줄기에서 갈라져 나오지만 레드우드는 줄기 자체가 땅속에서부터 갈라져 나온다. 그래서 한 뿌리에서 나온 여러 나무가 서로 힘이 되어주고 지탱해 준다. 그리고 오래된 나무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서 새로운 생명을 받은 여러 나뭇가지에 영양분과 수분을 나누어준다. 이것이 거목의 특징이다.

이 나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족’과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거목을 지탱해 주는 힘은 깊은 뿌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함께하는’ 정신에서 나온다. 모계 나무가 손상을 입고 쓰러져도 이 나무에서 또 다른 나무들이 자라 모계의 생명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결국 ‘함께 한다.’는 것은 너의 죽음이 나의 삶이며, 나의 생명이 너의 죽음이 되어 ‘우리’로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함께 한다.’는 것은 너의 고통과 나의 기쁨이 그리고 너의 행복과 나의 설움이 모두 뒤범벅되어 ‘생명’을 키워 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족 정신이며 공동체의 영성이다. 생태계의 존재 방식 안에는 우리 인간이 닮아야 할 위대한 삶의 패턴들이 들어 있다. 생명체의 기본 요소인 세포만 보더라도 수많은 세포가 네트워크로 이어진 개방된 시스템을 형성하면서 어느 하나 고립됨 없이 생명체 전체가 복잡하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함께 하는’것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앞서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옆 사람의 처지를 살펴볼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있는 곳이 중심이 되어 각자 나름대로 자기 자리에서 깊이 있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 가뭄도 타지 않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상호 의존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연결된 고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미세한 박테리아에서 거대한 지구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서로 영양분을 주고받으면서 자기 생식과 자기 생성을 해 나가야 한다. 따라서 소수의 ‘깊게’에서 다수의 ‘넓게’로 펼쳐지는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새로운 인식 전환 안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함께’ 가야하고 ‘함께’ 바라 보아야 하며 ‘함께’ 풀어가는 가족 영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는 것이다.

‘함께’는 뿌리가 얕아도 가뭄을 타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손상을 입어도 자생적으로 치유되고 죽어서도 최고의 몫을 해 나간다. ‘너’가 ‘나’이고 ‘나’가 ‘너’가 되는 공동체 안에서는 누가 강하고 약한지도 구분할 수 없다. 하늘과 땅에서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와 인류는 하느님의 숨결로 지음을 받은 단 하나의 ‘가족’일 뿐이다.
“나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에게 이름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립니다.”(에페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