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06282022 예수님의 7터치(비젼터치1, 제자들에게 비젼을 주시는 주님)
7. 비전(Vision) 터치 : 비전은 희망의 닻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활동에서의 정점은 부활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비전을 잉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로서 합당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것이 부활 터치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터치로 죽음은 생명으로, 구원은 확실한 실재로, 순간은 영원으로 바뀌었습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 머무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1) 먼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라.
예수님께서는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희망을 잉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비전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내 안에서 잉태되는 것이 비전입니다.
내 안에 하느님의 비전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비전이 잉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상처받은 제자들을 치유하시고 비전을 심어 주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하고 믿지 않은 철없는 제자들을 찾아 주신 것입니다.
미숙하고 철없는 제자들은 보여 주어도 모르고, 들려주어도 모르고, 만져 주어도 모릅니다. 십자가를 보고도 믿지 못하고, 부활하신 것을 보고도 충격만 받았지 사람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철없는 제자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물을 들고 고기 잡으러 돌아간 사랑하는 제자들을 부르러 티베리아 호수까지 가십니다. 제자들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바닷가에 서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봤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3년 동안 따라다니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자기 슬픔이 크면 남의 고통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코가 석자라 남의 사정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통이 크면 얼굴을 처박고 있기에 위도 보지 않고 옆도 보지 않고 어둠과 죽음만을 생각합니다. 자살자들이 자살만 생각할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느님도 안 보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주님은 바로 거기에 서 계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애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그들은 질문하고 있는 분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과연 많은 물고기가 걸려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고, 어디선가 옛날에 한 번 들었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을 많이 받은 제자는 예수님을 더 빨리 알아봅니다. “주님이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듭니다. 한시라도 더 빨리 주님께 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렇듯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사람이지만, 과거의 상처 때문에 감히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자신의 죄의 상처 때문에 예수님께 다가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따지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이미 베드로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간적인 약점, 실수, 부족함, 철없음, 죄, 모두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은 숯불에 물고기와 빵을 구워 주십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정말 멋지신 주님이십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리고는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하시며 당신의 양떼를 맡기십니다. 세 번의 질문과 대답 그리고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죄의 상처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뒤를 따르도록 분부하십니다. 여전히 사랑하고 용서하시는 주님! 인간의 죄의 비참함과 하느님의 자비. 이것은 베드로에게 비전을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