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2주간 화요일 강론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로 난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존재 양식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전의 살아왔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아 생활합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잠깐만 가능했던 삶의 방식이었을 뿐 곧 이러한 삶의 방식은 없어지고 맙니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하느님의 뜻대로 산다고 해도 사도들의 공동체나 수도공동체 등 특별한 삶의 양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공동의 회칙을 지니고 살아가지 않는 한 불가능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율법학자이며 예수님의 제자였던 니코데모와의 대화입니다. 니코데모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 3)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 5)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7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이란 구절을 보면, ‘위로부터’는 희랍어 ‘아노텐(ανωθεν)’을 번역한 말입니다. ‘위로부터’, ‘다시’라는 뜻입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다’는 ‘거듭 태어나다’, ‘다시 태어나다’라는 말로 번역될 수도 있는데, 희랍어 ‘겐네테 아노텐’(γεννηθή άνωθεν) 이란 단어입니다. ‘겐네테’는 ‘태어나다.’를 뜻하며, ‘아노텐’은 1차적인 의미가 ‘위로부터’이고 2차적 의미가 ‘다시’입니다.

   위로부터 거듭난다는 말씀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은총으로 다시 태어나서 구원의 삶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 말 표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희랍어 성경에서 보면 ‘겐네테’(γεννεθή)는 동사 ‘겐나오’(γεννάω)의 부정과거(일회성) 수동태(타의적)입니다. 이것은 곧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사람의 능동적인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작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단 한 번 이루어지는 유일회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세례성사는 단 한 번 밖에 받을 수 없는 기름부음을 받는 성사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신자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만 구원받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심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 구원은 우리의 공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세리와 창녀들이 바리사이들 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세리와 창녀들이 위로부터 오는 예수님의 은총에 자기를 송두리째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어떻습니까? 마치 자기의 단식과 기도, 선행과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수난하고 죽고 묻히시고 사흗날에 다시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세례성사는 지금까지의 과거의 죄에 물든 낡은 인간성을 버리고 우리를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재생의 세례이기 때문에 위로부터 새로 난 사람들은 위에 있는 것을 찾으며 사는 사람들이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 곧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생활방식을 선택한 우리는 오늘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며 사랑의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은총, 은사, 열매)으로 우리의 내면을 채워야겠습니다.

오소서, 성령님! 저희를 새로 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