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4주간 화요일

찬미 예수님!

요즘 스마트폰이나 PC게임 중에 『틀린 그림 찾기』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플래시 게임, 무료 게임으로 나와 있기도 합니다. 혹시 해 보셨나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 유대인들이 가졌던 메시아에 대한 이미지(像)와

2) 세상에 메시아(구세주)로 오신 실제 예수님의 모습 사이에

과연 얼마나 큰 차이점 또는 이질감이 존재했을까?

예수님은 그래서 병고침을 받거나 구마체험을 한 이들이 당신을 ‘다윗의 자손’이나 ‘메시아’로 여기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자들이 예언한 내용과 경제·정치 상황에 따라 변형된 메시아 상(像, Image)은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려고 하지만 간격을 좁히기가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아니 인간이 하느님의 생각,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끔 역사에 나오는 인물의 초상화가 전혀 실제 인물과는 다르게 그려진 경우가 있어서 나중에 그것을 바로 잡기란 어렵습니다.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이미지가 있어서 오히려 원래 초상화를 복원하거나 내놓으면 사람들은 자기들의 뇌리에 이미 새겨져 있는 것을 없애고 정확하게 역사고증을 거쳐 복원한 그림이 오히려 가짜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때로는 요즘 많이 나오는 가짜 뉴스가 진짜인 것처럼 둔갑하기도 합니다. 언젠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9% 죽었을 거다. 라고 확신하며 말했던 미통당 당선자 000씨가 사과를 했죠! 가짜가 진짜처럼 그럴듯하게 들리는 세상이라 어떻게 거짓된 정보를 거르고 제대로 된 정보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세상입니다. 한국의 포털 중에 다음이나 네이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어딘 가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습니다. 참으로 중용이란 어려운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유대인들은 속이 터져 예수님께 따지듯이 묻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유대인들은 하느님을 알고 있었고,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보내주시리라고 약속하신 메시아 곧 구세주가 오실 것을 알고, 믿고,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세상에 오셨는데도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 대한 그들의 생각과 실제 구세주 그리스도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모습에 대한 자기들만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표징을 일으키시고 아버지께 들은 말씀을 전해주셨는데도 유대인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또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졸이게 할 작정이오?” “진정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

진리를 알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처럼 교묘히 말하는 속셈이 드러납니다. “너희는 이미 말했는데도 믿지 않는구나.” “내가 행한 증거를 보면 알 수 있잖느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를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같은 곳(믿음, 희망)을 바라봐야 하는데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은 예수님의 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부도 서로를 마주 바라보는 부부보다는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사는 부부가 더 오래 잘 산다고 합니다.

현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편견,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참된 목자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언제까지나 자기들의 입맛을 충족시켜 줄 메시아를 찾아 헤맬 것입니다. 왜냐면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린 그림은 절대로 틀릴 수가 없고 오히려 자기들이 그린 그림에 맞게 행하지 않는 메시가 잘못된 메시아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현세적인 축복과 자기 욕구충족만을 기대하는 그림을 갖고 메시아를 찾는다면 그들은 결코 구세주를 얻어 만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는 말씀이 오히려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슬픔과 고난과 죽음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세의 어떤 어려움과 암흑 속에 떨어진다고 해도 영생이 시작됨을 믿고 모든 걸 견디어 내는 사람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고 때로는 목숨을 잃을지라도 우리도 하느님을 끝까지 믿고 희망하며 그분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안티오키아 교회 공동체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을 계시해 주신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며 흠숭과 영광을 드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신분과 사명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