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6주간 금요일 강론

<과학자들이 임신한 고양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였습니다.>

두 마리 임신한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에 임신한 고양이에게는 고통 없이 새끼를 낳을 수 있도록 ‘무통주사’를 놓았고, 다른 한쪽에 임신한 고양이에겐 무통주사를 놓지 않고 고통 가운데 새끼를 낳게 하였습니다.

새끼가 자라는 동안에 어미는 새끼들이 커지면서 어미를 귀찮게 하는 행동을 하였습니다. 자연분만한 어미는 귀찮게 하는 새끼들을 계속해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런데 무통분만한 어미는 어느 정도 피해 다니다가 나중에 어느 순간에는 새끼를 콱 물어 죽였습니다. 해산할 때 여인은 본능적으로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잘 태어날지 두렵기 때문이랍니다.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진통보다 아이에 대한 걱정이 훨씬 큽니다. 그만큼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그런데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무통주사’를 원하는 것은 은총을 외면하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떼르뚤리아노의 “고통은 은총의 전주곡이다.”라는 말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고통 가운데는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 숨겨놓은 보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선물인 은총입니다. 농부가 농사지을 때는 허리가 부러질 듯이 아프고 고통스런 나날이 많습니다. 그러나 수확을 거둘 때가 되면 큰 선물을 받아 안게 됩니다. 과일, 채소, 곡류 등 농작물을 거둬 들일 때의 기쁨은 참으로 뿌듯하고 감격스럽습니다. 저도 시골에서 농사일을 해봤기 때문에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수난의 시간을 앞두고 게쎄마니 동산에서 갈바리아에서 고통의 시간을 지내셨습니다. 무덤에서의 시간들. 그러나 부활의 기쁨을 통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의 끝에 부활의 영광과 기쁨이 있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복음 첫머리에서처럼 제자들은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의 부활로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또 다시 승천으로 제자들 곁을 떠나시는 예수님은 다시 만날 때 더 큰 기쁨이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신앙 안에 형제자매들이 한 분 또 한 분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잘 알고 지내던 형제님, 자매님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언젠가 주님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근심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의탁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리고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나길 바라십니다. 불안과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닥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인간적 계산으로 피하려 해선 안 됩니다. 정면으로 상황을 직면하는 가운데 은총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도 바오로가 고린토에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밤 주님께서 환시 속에서 바오로에게 이르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사도 18,9-8)

요한 16장 전체에 흐르는 내용은 기쁨입니다.

부활을 통하여 세상을 이기신 주님께서 다시 오시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인식에서 오는 것이 기쁨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충만하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인식은 오로지 성령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러한 기쁨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정복하셨다는 인식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보호자 안에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 것으로 인하여 지속되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고난 가운데서도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성령을 통하여 세상을 이기신 분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부활의 기쁨을 느끼는 이는 세상을 이기신 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먹었더니, 그 말씀이 제게 기쁨이 되고, 제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주 만군의 하느님, 제가 당신의 것이라 불리기 때문입니다.”(예레 15, 16)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지금의 어려움을 견뎌내면 반드시 큰 기쁨이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하시며 희망을 안겨 주셨습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했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사도 2, 25-26)

“참 기쁨은 주님을 모시는 데서 오는 것이고, 믿음 없이는 하느님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히브 11, 6)

“세상을 두고 기뻐하지 말고,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죄 안에서 기뻐하지 말고, 진리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허영의 꽃을 두고 기뻐하지 말고, 영원한 희생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얼마나 오래 살든 간에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성 아우구스티노)

“기쁨이 크면 클수록 그것에 앞서 괴로움 또한 큰 것이니 너무 큰 기쁨만을 추구하진 마십시오.” (성 아우구스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