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 주간 화요일 강론

성서신학사전에 나오는 『샬롬(Shalom), 평화』의 뜻을 살펴보면,

안녕, 물질적 축복

전쟁과 개인적인 원수가 없는 것.

번영, 즐거움, 성공적인 삶, 경사스러운 분위기.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구원.

내적 실재나 마음의 평화 이상의 것.

예수님께서 공동체에 유산으로 넘겨주시는 종말론적인 축복.

예수님 자신에 의해 얻어지는 평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선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평화는 구원받았음을 드러내는 표지.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한 총괄적인 약속.

하느님께서 화해와 평화의 유효한 표지로 인간에게 보내신 그리스도의 선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드러난 사랑의 종착역. 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는 평화라는 단어가 대략 92회 정도 나옵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고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세상이 줄 수 없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야 주실 수 있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불의의 끝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삶이었습니다. 그 끝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의로움을 따라 살았던 예수님의 삶이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시기를 지내는 우리는 우리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쪽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결과는 참된 평화,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약삭빠르게 살거나 양심을 속이거나 악하고 불의한 줄 알면서도 세상의 논리에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세이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남들도 다하는데 라는 말로 합리화를 시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을 따라간다는 것이 우리의 양심을 찔리게 합니다. 만일 지금까지 불의와 이기심의 극대화,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면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을 추구하는 삶인지 깊이 생각해서 인생의 방향을 수정했으면 합니다. 인생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방향이 중요하니까요. 하느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인생인지? 그래서 천국에 도달할 수 있는 방향인지? 아니면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의로움과 반대되는 방향, 곧 지옥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인지 내 삶의 방향을 잘 가늠해 봐야겠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승리에서 나오는 평화입니다.

예루살렘은 = ‘여루-샬라임’에서 온 말입니다. 곧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고대인들에 의해 이 도성이 세워진 이래 단 한 번도 평화로웠던 적이 없는 도시입니다. 언제나 분쟁과 대립의 한복판에서 멸망과 재건이 수도 없이 반복됐던 도시가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위하여 기꺼이 죽어 주며, 아버지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기를 청하는 용서와 십자가 대속(죄많은 인간을 위하여 대신 속죄하심)을 통하여 부활에 이르는 평화를 이룩하십니다. 참 평화는 서로를 위한 자아 포기와 용서의 바탕 위에서만 이룩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가까운 선배신부님이 성지담임 신부를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교구 어느 본당신부님이 전화를 해서 야외미사를 그 본당만 따로 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지 한 쪽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답니다. 마침 주일이었는데 미사 중에 자체적으로 주일 헌금을 거두고, 점심은 전신자가 도시락을 싸와서 홀라당 까먹고는 성지발전 위해 쓰라고 달랑 성지에 10만원만 주고 가더랍니다. 그 선배 왈 “아씨 뭐 저따위 신부가 다 있냐? 차량 12대에 500명이 와서는 기껏 미사 차려 줬더니 헌금도 싹 거둬가고 미사예물도 지가 다 갖고 가고 식당도 이용하지 않고 도시락 까쳐먹고 똥만 싸질르고 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냐? 아오, 열 받아! 성지 입구에 소금 뿌려야겠어! 성지는 뭐 먹고 살라는 거야?” 하며 무려 30분 이상을 그 신부 욕을 퍼부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습니다. 도시락 싸 갖고 다니면서 그 사람의 결점을 뜯어 고쳐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도 허물이 있는데 어쩝니까?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죠! 미움도 고움도 언젠가는 다 자기가 짊어지고 가게 될 것입니다. 그저 하느님께 맡기고 허물이 있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하면 되죠! 어쩌겠어요.

5년 전에 한국에 소울메이트에서 출판한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책이 있는데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라는 책입니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어 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여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오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이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고, 어떠한 마음의 혼동도 없을 것입니다. 역할 혼돈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것도 잃어버리거나 얻는다는 의식 없이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잠언 16, 33에도 “제비(주사위)는 (사람의) 옷 폭에 던져지지만, 결정은 온전히 주님에게서만 온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고 모든 결정권은 하느님께 달린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주님께 “의탁”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오늘 제1 독서 사도행전 14장 23절에서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교회마다 제자들을 위하여 원로들을 임명하고, 단식하며 기도한 뒤에, 그들이 믿게 된 주님께 그들을 의탁하였습니다. 신앙은 신뢰요 의탁입니다. 샬롬! 평안한 하루, 주님께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의탁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