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여인아, 왜 우느냐?”,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누구를 찾느냐?”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듣고 싶은 소리는 사랑하는 이의 음성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정원지기로 생각합니다. 이 현세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부활은 역사 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역사 외에서 곧 초자연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그분을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말입니다.

초자연적인 사건은 초자연적인 안목(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인지 될 수 있습니다.

“마리아야!” “라뿌니!(스승님)”

처음에는 그토록 바라던 예수님을 마리아 막달레나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저 무덤이라고 하는 현상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왜 처음에는 몰라봤을까? 새로운 존재 양식, 다시 죽지 않는 분으로 부활, 죽음의 세력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존재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초월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가 아닌 하느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하느님의 주도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부활은 하느님의 승리입닌다. 이 하느님의 승리에 우리가 그분의 초대로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삶이 진실이었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징표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결국 성공한 것입니다.

성 론지노(3월 15일 축일)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백부장입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그는 예수님 사후에 로마군인으로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사도들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론지노는 수도생활을 하며 지내다가 박해를 겪게 됩니다. 집정관은 론지노의 이(이빨)를 뽑고, 혀를 잘랐으나, 그의 설교를 중단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도끼를 들고 이방인의 신상들을 때려 부수며 “이게 무슨 신이람.”하고 외쳐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자 집정관은 그를 즉석에서 참수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론지노의 유해는 만투아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키레네 사람 시몬>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마르 15,21) “주님 안에서 선택을 받은 루포스, 그리고 나에게도 어머니와 같은 그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로마 16,13) 루포스는 사도 바오로의 문안을 받을만한 인물이었고, 전승에 따르면 동방교회의 주교로 봉사하였다고 합니다.

지상에 묶여있는 인간은 부활이라고 하는 실재, 새롭게 변화된 초자연적 실재에 닿지 못합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값비싼 향유(300데나리온 어치 – 1년치 장정의 품삯, 순나르드 향유)를 선뜻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순수하고 참된 사랑을 의미합니다.

“누군가 제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랑하는 대상이 내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입니다.”(필립1, 21)-“사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새 번역)

부활은 경험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사건이요, 하느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름을 부를 때야 비로소 알아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죄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

“나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가시오.”(사도 3, 6-7)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사도 2,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