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2주간 화요일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 6)

<성 예로니모> :

돼지 – 한 번도 복음의 빛을 접해 보지 못한 이교인들을 지칭함.

개 – 한 번 회개했다가 다시 무신앙으로 타락한 인간을 지칭.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돼지 – 타락한 사람.

개 – 회개의 가망이 없는 불신자를 지칭.

<거룩한 것>은 성전에 봉헌된 축성된 음식, 정결하고 존귀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은 진주와도 같은 것이지만 개나 돼지에게는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개와 돼지에게는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개나 돼지는 진주를 주면 화를 내며 짓밟아 버리고 먹을 것을 줘야만 좋아합니다.

본능적이고 쾌락, 방종, 안일,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복음의 말씀, 성사, 사랑의 계명, 완덕의 가치가 돼지목에 걸린 진주에 불과할 뿐입니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그것을 가르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볼 때에도 신앙을 받아들일 적당한 준비와 교육이 없이 세례를 주는 것은 오히려 변절자, 냉담자, 배교자, 박해자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입교자의 입교준비기간이 3년이었습니다. 또 새 예비자교리서에도 보면, 전예비기간 – 예비기간 – 신비교육기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단계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슬픔에 찬 탄식을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기심을 버리는 일, 이타심을 기르는 일, 본능과 욕망을 절제하는 일,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일이야말로 좁은 문이고 힘든 길입니다. 이 길로 찾아오는 사람이 적습니다.

<라삐 힐레르>는 한 사나이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내가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율법을 모두 가르쳐 주시면 당신의 제자가 되겠소!” 그러자 라삐 힐레르가 “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다. 나머지는 그에 대한 설명이다.” 이 요구를 무시하면 멸망의 문으로 가는 것이다.

<공자>도 제자들에게 “네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끼치지 말아라(행하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적극적인 실천을 요구를 하십니다. “네가 남에게서 바라는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율법은 명령과 금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율법 : 금령은 “~하지 말라”(365조목)이고, 명령은 “~하라.”(248조목)입니다.

365조목(일 년) + 248조목(당시 의학으로 사람 뼈의 개수) = 613조목

1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하느님의 법을 뼈에 사무치도록 새기고 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613조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을 깊이 새기고 살아왔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러면 좁은 문 곧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