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5주간 화

<불행하여라>

(마태 11,20-24)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세 지방 코라진과 베싸이다 그리고 가파르나움을 불행하다고 말씀하신다. 왜 예수님은 코라진과 베싸이다 가파나움을 불행하다고 하셨을까?

우선 예수님이 코라진과 베싸이다, 그리고 가파르나움 지방에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또 어떤 기적을 행하셨는지 알아보는 것이 오늘 복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코라진은 갈리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3Km 떨어진 고을입니다. 베싸이다는 북부 요르단 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오는 입구 동쪽에 있는 어촌으로서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필립보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가파르나움은 호수 북변 어촌으로서 거기에는 시몬 베드로의 집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 주로 그 집에 거처를 정하고 갈릴래아와 이스라엘 각지로 전도 여행을 하셨습니다.

위에 언급된 세 지방은 모두 예수님이 전도 여행을 하셨던 곳입니다. 반면에 티로와 시돈 지방은 이방인의 도시로서 예수님의 전도 여행이 미치지 못한 곳입니다. 다시 말해서 코라진과 베싸이다,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이 직접 복음을 전한 곳이며 티로와 시돈 지방은 예수님이 직접 복음을 전한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력해서 직접 복음을 전한 세 지방에서의 복음 선포가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불행하다”라는 말은 “주의해라, 슬프구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서 복음을 전하였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해서 슬프다, 안타깝다. 라는 뜻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들에게 그토록 조심하라고 말했는데 말을 듣지 않고 사고가 났을 때 부모가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코라진, 베싸이다, 가파르나움을 불행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말을 해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술을 마시면 결국 그 사람은 알콜 중독자가 되고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병이 들어 불행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지방이 있지만 특별히 가파르나움 지방을 중심으로 복음 즉 하느님의 기쁨 소식을 전하셨으니 그 지방은 얼마나 축복을 받은 지방입니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얼마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불행한 일입니까? 오히려 이방인의 지방인 티로와 시돈 지방에서 그토록 열심히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셨다면 “그들은 아마도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코라진과 베싸이다 그리고 가파르나움이 불행한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복음만 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기적들도 행하시면서 당신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그리고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구세주이심을 드러내 보여 주셨지만,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복음을 듣고 복음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회개의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축복을, 은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는 것입니다.

은총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특히 복음은 하느님의 크나큰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서 인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 인간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제시해주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 병든 인간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 그 치유의 방법을 말씀하시고 또 말씀을 통해 직접적으로 치유해 주십니다.

복음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가장 큰 선물이며 축복이고 또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유일한 약입니다. 그러나 평양감사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듯이 예수님께서 아무리 큰 선물과 축복을 주시고자 하더라도 그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축복은 축복이 될 수 없고, 선물은 선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그리고 많은 축복과 은총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복음을,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 각자의 자유 의지에 맡겨진 것입니다. 복음 선포는 예수님이 인간에게 베푸시는 축복이고 선물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

복음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축복인데 그것을 인간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불행일 뿐 아니라 죄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을 거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진지하게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죄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우리가 잘 모르는 데에서 빚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지 못하고 하느님이 주시고자 하는 큰 선물을 받지 못하고 하느님이 가르쳐주신 길로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활동하셨을 때에 코라진과 베싸이다와 가파르나움에 복음을 전하셨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듯이 오늘날에도 복음이 선포되고 있지만 여전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거나, 복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거나, 또는 복음의 내용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축복을 받아들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 귀중한 선물을 하나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불행해지는 것이고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접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신자라고 해서 다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비신자들보다 더 많이 복음을 듣고 알아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지만, 이 큰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심판 날에 오히려 비신자들보다도 더 깊고 깊은 저승에 떨어질 것입니다. 비신자들이 우리처럼 복음을 접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아마도 우리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하고 더 올바르게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시듯이”(마태 5, 45) 오늘도 예수님은 카톨릭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선포하십니다. 신자라는 신원만으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또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알아듣고 회개하여 복음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고 행복하게 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