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7주간 금요일 강론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지혜는 하느님이 말씀에 그 원천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느님의 말씀에 머무는 사람은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어느 본당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성서를 50번만 읽으면 도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게 농담이 아닙니다. 진실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하시면 지혜가 생깁니다. 예전에 대출받을 때 보증서는 제도가 있을 때였습니다. 저는 22년 전 첫 본당 주임로 발령받아 나가면서 매년 1월 중 주일미사 때 1년에 한 번은 강론 때 이 말을 꼭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무리 친한 사람도 “보증을 서지 마라.”는 얘기를 매년 한 번은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말씀이니 절대로 보증은 서지 말라는 것이죠. 이 말씀은 집회서 29장 14절 이하와 잠언 6장 1절 이하에 나옵니다. 아무리 친한 친척이나 친구가 찾아와 보증을 서달라고 해도 서 주지 말라. 그리고 만약 보증을 서 준다면 자기 배우자와 자녀와 상의해서 가족이 모두 동의하면 서주어라. 왜냐면 그 후유증 및 고통은 대를 이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줬습니다. 주님 말씀이니 보증서는 일은 절대로 하지마라. 정말 가까운 사람이라서 도와주고 싶다면 당신 가족들과 상의해서 친분의 정도나 갚을 능력을 고려해서 당신의 1개월 수입이나 3개월, 6개월, 1년치 수입을 빌려 준 후에 아예 떼었다고 생각해라. 이게 저의 강론이었습니다. 제 강론을 듣고도 보증을 서 주신 분들은 앞으로 저를 아는체 하지 말라고도 했습니다.

아무리 강론 때 얘기해도 신부 말을 안 듣고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을 여럿 봤습니다. 그래서 입만 아플 때가 있습니다. 간혹 제 말대로 보증을 서주지 않은 분도 있는데 대신 다른 친구가 남의 보증을 서 주어서 십수 년째 고통받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가 하느님에게서 온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저 예수님을 시골의 무지렁이 목수의 아들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못마땅해하고 배아파하고 질투와 무시로 예수님을 대합니다. 그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를 신뢰하고 인정하는 사람이 복을 받게 됩니다. 몰라보고 알아주지도 않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놓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이 서로를 믿어준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예언자는 힘듭니다. 사람들의 입맛대로 말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는 고향 사람들에게 맞추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만 말씀을 받아 전하기 때문에 고향에서도 환영을 받기보다는 배척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스페인 로욜라 가문 출신의 성 이냐시오 사제 기념일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교황의 사도직을 지지하는 예수회를 창설한 분입니다. 수많은 영적인 싸움과 영신수련을 통하여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신 분입니다. 기도, 단식, 고행, 성사생활, 동굴생활, 극빈자를 돕는 봉사생활 등등. “하느님의 더 큰 영광에 닿도록”이라는 모토를 실현하기 위한 온갖 노력들을 봉헌하신 성인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찾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희생, 봉사, 사랑에 내어놓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좋은 뜻, 고귀한 뜻을 품는 데 그치지 않고 실행하고 완성하기까지 부단히 싸우고 싸워서 승리할 수 있도록 영적인 수련에 매진하면서 그리스도의 은총의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 코로나의 위기 속에서 주님의 도움을 청하면서 힘차게 나아가고 굳건하게 잘 견디어 냅시다.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계셔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