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 주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중에 하나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처럼 여기는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용서보다는 복수심을 갖게 됩니다. (세 부류의 사람 : 악이던 선이던 악으로 갚는 이, 악엔 악 선엔 선, 악을 선으로 선엔 더 큰 선으로)
오늘 1독서 집회서의 말씀은 “복수하는 자는 주님의 복수를 만나게 되리라. 그분께서는 그의 죄악을 엄격히 헤아리시리라.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때 네 죄도 없어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일본 오이타현에는 경명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습니다. 이 경명산 밑에 지하에는 340M의 터널이 있는데 이 터널은 ‘젠카이’라는 닌자가 30년 동안 괭이를 가지고 직접 자기 손으로 뚫은 터널입니다. 닌자 생활을 하던 젠카이는 어느날 자기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깨닫게 되고, 닌자 생활을 청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루카’라는 젊은이는 젠카이라는 닌자에게 아버지를 잃게 되었습니다. 이루카는 아버지를 죽인 젠카이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갈며 닌자가 되는 수업을 받습니다. 드디어 닌자가 되어 아버지를 죽인 원수 젠카이를 찾았지만 젠카이는 이미 닌자를 그만두고 자기 잘못을 속죄하기 위하여 경명산에 막혀서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두 마을을 연결시켜 주려고 터널을 뚫는 작업을 이미 27년째 하고 있었습니다. 젠카이는 이루카에게 부탁합니다. 5년만 기다려 달라고… 5년 후 터널이 완성된 후에 내 목을 내놓을테니 그때까지만 참아달라고… 그리하여 이루카는 5년을 기다려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좀 더 빨리 복수하려고 자기도 터널 뚫는 작업을 도왔습니다. 이루카라는 젊은이는 복수를 위해, 젠카이라는 은퇴 닌자는 속죄를 위해 터널을 뚫는 작업을 했습니다. 3년 후 터널은 완성되었고 젠카이는 이루카 앞에 무릎을 꿇고 목을 내밉니다. 그러나 이루카는 젠카이와 함께 터널을 뚫는 작업을 함께 하며 그를 용서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용서의 근본원리는 이해입니다. 이해(under + stand)는 ~의 아래에 서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1) 용서할 대상자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것, 그 사람의 상황에 대한 이해
2)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
진정한 용서는 하느님 안에서 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보시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대속의 수혜자가 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나도 남을 위해 자기 십자가와 희생을 기꺼이 바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죄는 우리가 나약한 인간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1,18)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청할 때 하느님은 일흔일곱 번이라도 거듭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문제는 나도 용서받았으니 남도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처럼 ‘무자비한 종’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여러분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시오.”(루가6,36)라는 요청대로 자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사랑은 용서로 표현됩니다. 왜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해야 용서받기 때문”(루카6,37)입니다. 성서에서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죄인은 이미 하느님 앞에서 죽은 것(루카15,24)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죄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행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어렵게 하는 주범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1) 다른 이의 처지를 인정하지 않는 것
2) 자기 자신의 처지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과 처지를 살피기 전에 그의 부족함과 잘못을 질책하고 단죄하는 것입니다. 남의 부족함을 경멸하는 것입니다. 정작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면 핑계를 대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하면서도 남에게는 모질게 단죄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용서 이전에 『너 자신을 알라』는 초대입니다. 자기 자신을 잘 성찰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용서는 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요,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넘어서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 주는 은총입니다.
집회서 저자의 의도는? 이제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보여주신 그 용서의 은총과 기쁨을 너희 안에서 실현해야 한다.”라는 권고입니다.
용서받는 사람이 기쁨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용서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닮게 되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열쇠는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주님을 향하여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