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7주간 화요일
오늘(10월 6일)은 성 브루노 사제 기념일입니다. 이분은 엄격한 카르투시오 관상수도회를 창립하신 분입니다. 1032년 독일 쾰른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학업을 마쳤을 무렵에는 이미 훌륭한 시인, 탁월한 철학자, 신학자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사제로 서품된 후, 랭스 학교에서 18년간 교편을 잡았는데, 그의 제자들 중에는 유명한 인물도 많았다. 그중 한 사람이 교황 우르바노 2세입니다. 제자였던 성 후꼬 주교의 도움으로 해발 1,500피트의 골짜기에 소성당과 일곱 개의 작은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기도, 묵상, 노동생활을 하며 청빈을 지키고 엄격한 침묵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시작입니다. 제자였던 우르바노 2세 교황은 스승을 흠모하여 교황청으로 불렀고 브루노 성인은 순명의 정신에 따라 눈물을 흘리며 은수처를 떠나 교황을 보좌하여 교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협력하였습니다. 교황은 그를 렉기오의 대주교로 임명코자 하였으나 그는 이를 사양하고 은수 생활을 간청하여 허락을 얻었고 로마를 떠나 제자들과 함께 조용한 곳을 찾아 샤르뜨뢰즈에서와 같은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성 브루노는 회의 회헌을 쓴 일도 수도원을 설립할 의향도 없었으나 첫 카르투시오 회의 회원들이 생활한 규범이 회헌으로 정리되고, 그들에 의해 창설자로 추앙되었습니다. 성 브루노는 “한 번도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도 개혁된 적이 없는 수도원을 창설했다.”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타니아라는 마을의 마르타와 마리아 가정을 방문하십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손님이 예수님이라면 그분을 대접하는 데 있어 나 중심으로 대접하는 것보다는 그분이 바라시는 게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그분 중심의 손님 접대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들려주고 싶은 분께 가장 좋은 몫은 바로 경청하는 자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몫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신자들 가정 방문을 하면 무척 분주합니다. “신부님이 뭐를 좋아하시냐?”, “응 떡을 좋아한다.”라고 하더라. “아니야, 잡채를 좋아한다~!” 등등. 그런데 막상 그 가정에 도착하면 가족과 만나서 대화를 해야 하는데 주방에서 뭐 먹을 거 만든다고 정신이 없으니… 그냥 마실 물만 있으면 된다고 다른 건 다 필요 없으니까 저와 대화만 하면 된다고 그리고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겠다고 미리 공지를 했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필요한데 다들 마르타 역할만 한다고 합니다.
사실 다 필요한 몫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마르타는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 놀라운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 주님!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장).
예수님을 섬기는 최상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대접을 받으려고 방문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방문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려고 방문하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정작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고 지나쳐버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들음으로써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꾸 들려주어야 신앙이 자랍니다. 자꾸만 들으려고 해야 신앙이 커집니다.
“주님, 오늘 제가 주님의 발치에 앉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께 마음을 열고 당신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것에 예! 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신명기의 “쉐마 이스라엘”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 밖에 나갈 때나, 잠자리에 들 때나, 일어날 때나 거듭거듭 들려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