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0주간 화요일

왜? 하필이면 겨자씨인가?

하느님의 나라를 다른 것에 비유하실 수도 있는데 왜 예수님은 겨자씨에 비유하셨을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놀라운 성장을 이루고 커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 비결이 『자기 스스로 작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뜻대로 하고 싶고, 내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움직여 보고 싶고, 내 멋대로 하고 싶은 욕구와 욕심이 권력을 추구하게 합니다. 내가 커지고 싶은 욕망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내가 다스리는 나라, 내가 다스리는 단체, 내 멋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꾼다는 것은 하느님을 쫓아내겠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만 성경 위에 손을 얹고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서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제스처를 할 뿐이고 실제로는 내 뜻과 의지가 하느님의 뜻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통치자나 지도자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이것은 가정 공동체, 신앙 공동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재와 민주적인 방식의 차이는 경청하려 하느냐? 경청하지 않느냐? 소통하려 하느냐? 불통하고 막혀버린 동맥경화를 만드느냐? 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신 이유는? 스스로 작아져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겨자씨는 침 핀의 머리만큼 작은 크기입니다. 그런 작은 것이 3~4m 크기로 자라나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어 사는 터전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커지면 그분은 작아지셔야 합니다. 내가 작아져야 그분의 말씀,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 잘난 멋에 사는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함부로 단정 짓고, 재단하고, 판단하고, 함부로 말합니다.

내가 어떤 힘이나 직급이나 학업이나 무엇이나 뛰어나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상대방을 내려 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순간 상대방의 아래에 서서 헤아리는 Under + Stand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이해시키려’ 듭니다. “봐! 내가 맞고 저 사람이 틀렸어!”, “내가 옳고 네가 옳지 않아. 그러니 너는 내 편을 들어줘!” 우리는 이런 적이 없습니까?

또 다른 비유는 누룩입니다. 밀가루 속에 누룩을 넣으면 온통 부풀어 오릅니다. 누룩이 무엇입니까?

저는 그것이 ‘꿈,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보다 더 좋아지겠지! 이제 더 나아질 거야!라는 희망 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하여 닦아야 할 덕은 믿음, 희망, 사랑입니다. 신, 망, 애의 덕을 하느님께 두지 않으면 이 세상의 것(재물, 부귀영화, 권력, 세속적인 것들)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한다면 우리는 현세 지향적인 세속인일 뿐이지 천상의 것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에페소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보기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기까지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도 아내를 목숨을 바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처럼 아내도 남편에게 순종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순종이 아니라 상호 간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옛날에 한 때는 신자들이 서로를 부를 때 Domine(도미네)라고 부른 적도 있답니다. “주여!”라는 뜻이죠. 내가 만나고 바라보는 신자는 주님의 모습을 닮은 또 다른 주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제2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또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못난 모습이긴 하지만 앞으로 장차 훌륭한 덕행을 닦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존경해주어야 합니다. 현실태(Actuality)만 바라보지 말고, 가능태(Potentiality, Possibility)를 볼 줄 아는 희망하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요? 사람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인생은 미완성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답답하지만 미래에 가능성이 있으니까 지금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모자라고 부족한 대로 수용하고, 포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님! 제가 겨자씨처럼 작아져야만 주님께서 저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주님은 작아지시고 없어지셔야 합니다. 제가 당신 앞에서 저를 한없이 낮출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