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5주간 화요일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에수님의 제자들이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는 구실로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다.”라고 말씀하시며 반박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반박하신 근거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라는 계명입니다. 엄연히 계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서 ‘코로반’이라는 말로 얄팍한 핑계를 대고 하느님의 계명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자기 자신의 욕심과 위선을 감추는 가면을 벗고 떳떳하고 바른 양심으로 참되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구실로 없는 재산을 성전에 바쳐서, 가난한 부모와 다른 사람들을 돕지 못하게하는 서약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격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런 서약을 하느님께서 기뻐하실리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부모를 외면하는 경신례가 아니라 그들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친교 제물과 살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을 개울처럼 넘쳐흐르게 하여라.”(아모 5,22-24)
자기 자신을 아는 지식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병행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도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디 쯤 와 있는지? 어디쯤 서 있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테스 형님이 그랬잖아요. “너 자신을 알라.” 자기 주제파악이 안되는 사람은 하느님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가면을 벗기고 그들의 속내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폭로했을 때, 그들은 진실을 대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걸 참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자기애는 하느님마저도 배척하고 외면할 수 있게 만드는 하느님 나라의 걸림돌입니다. 지금 우리 자신의 마음 안에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마음보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다면 우리 자신도 언제든 주님을 모른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미사에 참례하거나 신심 행위에 참여하기보다는 자신의 영적 성장을 진심으로 열망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