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9주간 금요일

예수는 누구이신가? 에 관한 질문과 대답에 따라서 한 사람의 인생과 한 나라의 진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어떻게 믿느냐? 라는 문제는 아주 크고 중요합니다.

잘 믿으면 현세에서도 행복하고 내세에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만 잘못 믿으면 현세에서도 불행하고 내세에서도 불행합니다. 진정한 종교를 믿는 것과 사이비 종교를 믿는 것도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사이비 종교에 발을 잘못 디뎌서 인생을 망친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당회장이라는 사람에게 몸도 마음도 망치고 돈도 다 빼앗긴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에게도 신천지신도라는 것을 숨겨서 온 가족이 코로나에 감염되고 연로하신 부모는 세상을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그분을 메시아로 알고 믿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시면 이 땅 위에 강대하고 잘 사는 지상의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해 줄 것이라고 믿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신가?”,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신가?”라는 물음에 관하여 예수님을 예언자나 유명한 랍비 등으로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예수님을 메시아 또는 그리스도로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던 것 같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물음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한 것이 유일하게 메시아로 알아본 것입니다. 대다수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그저 병을 고쳐 주시고 빵의 기적으로 자기들의 민생고를 해결해 줄 분으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지상적인 메시아로만 본 것입니다.

많은 율법학자들은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말을 들어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내 오른쪽에 앉아라.”라고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라는 말씀입니다.

마태오 복음 1장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는 소제목을 접하게 됩니다. 여기에 보면 이상한 것이 느껴지지 않나요? 한마디로 족보가 dog table(개판)이라고 생각되진 않나요? 유식한 말로 족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보게 됩니다.

불연속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과 예수님 사이에 나타납니다. 그것은 그다음 마태오 1장 18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소제목의 내용을 보면 나옵니다.

다윗 가문에 약속하신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지만 그래서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법적인 아들이지만 양자나 마찬가지이죠! 육화(Incarnatio)를 통해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인 요셉의 양자가 되신 이유는 어쩌면 세례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양자·양녀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니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님입니다.

오늘 복음은 당신의 정체성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당시 사람들의 비뚤어진 방향감각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한 인간이요 국사범으로 십자가에 처형된 사형수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분의 정체성이 끝나면 큰일입니다. 그분은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온(Incarnatio)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유다 민족을 위한 세속적이며 대중 인기 편중의 정치적인 메시아! 그것은 그분의 진실된 정체성을 아는 데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오류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내 방식대로만 이해하는 경향은 없는지요? 그래서 방향감각을 잃고 주님을 참되게 만나는 법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 오늘 제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의 끝에 주님께서 저를 맞아 주시겠지요? 제가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더디 가더라도 방향을 잃는 것보다는 속도를 줄이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의 끝날에 부디 당신을 뵙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