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 주간 화요일
우리말에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세우시며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라고 하십니다. 또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잘 나면 얼마나 잘났습니까?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씀입니다. 백인, 황인, 흑인, 유럽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동남아인 등등. 피부색, 문화의 차이, 지역적 차이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까?
모두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빚어 창조하신 인간이 아닙니까? 누가 누구를 업신여길 수 있는 자격을 얻었나요? 오늘 예수님은 아무리 작은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라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잘났다고 하는 사람은 좀 자신을 낮추어 겸손해져야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좀 못나고 또 잃은 양 한 마리일지라도 찾아 나서서 그 양을 찾고 구원하는 것이야말로 하늘나라에서 기뻐하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어린이가 엄마를 의지하듯이 하느님을 의지하고 겸손함으로 사랑으로 우리의 내면의 상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어린이는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합니다. 우리 또한 하느님 없이 살지 않도록 하느님을 찾는 마음을 우리 안에 늘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 놀이들이 생각납니다. 친구들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뛰어놀던 그 시절. 숨바꼭질, 담방구, 구슬치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오징어, 팔자 자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사방치기, 얼음 땡, 멱감기, 다슬기 잡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등. 그저 누가 뭐를 하자면 좋다고 그냥 옆에 친구들이 있고 놀꺼리가 있어서 좋고 그러한 마음으로 함께 했던 어린 시절. “재미있겠는데?” 하면서 함께 놀아주던 마음들.
오늘은 클라라 성녀의 축일입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를 듣고 감동하여 2년 뒤 주님 수난 성지주일 밤에 ‘보속의 수도복’을 입고 순명서약을 한 뒤, 복음적 가난과 겸손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충실하게 사셨던 성녀 클라라의 거룩한 삶을 돌아보며 그분의 말씀을 새겨봅니다. “그대는 다른 이들이 바라보고 따를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가고 있는가?”
부디 내면의 큰 변화를 이루어 하느님 나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오늘의 나 자신이 되게 해 주시길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