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일 강론

찬미 예수님!

오늘 주님의 말씀은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고 그들도 구원의 대열에 들게 된다는 말씀이 선포됩니다.

<제1독서> 제3이사야는 유배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들려지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들, 주님의 계약을 준수하는 모든 이들을 주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주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라는 말씀이 선포됩니다.

<제2독서>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민사상과 구원관에서 벗어나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불리움 받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이방인들도 하느님의 자비를 입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지방(지금의 레바논지역)으로 물러가서 제자들과 휴식을 취하시려는데 가나안 출신의 유스타라는 부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딸 베레니체를 위하여 겸손되이 간청하는 내용입니다. 결국, 그 여인의 믿음은 더 깊어지고 딸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여인이여, 그대는 약한 자이다. 그러나 어머니여, 그대는 강한 존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도 자기 딸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리고 어떠한 시련과 고난도 다 인내하며 겪어낼 각오로 예수님을 찾아와 소리칩니다.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마디 대꾸도 없으십니다. 계속 소리치며 따라오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라고 중재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은 무관심하고 냉정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서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말씀으로 이방인 여인에게 모욕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 여인의 깊은 겸손과 간절한 청원은 예수님께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더 깊게 굳게 키워주시려고 일부러 무관심 – 냉대 – 모욕 등을 통하여 시험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가나안 여인에게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1) 자기 자식(딸)을 사랑하는 마음(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머니) :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을 수 있고, 자기 자존심도 버릴 수 있다. 나는 개 취급을 당해도 좋으니 내 딸만 낫게 해 주세요!

자식의 병을 고쳐야겠다는 일념은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외치게 합니다.”

2) 창피함을 잃어버린 어머니 : 한국의 아줌마들! 내 자식에게 장애가 있거나 어떤 결함이나 약점이 있으면 쉬쉬하는 게 보통인데, 이 여인은 큰 소리로 동네방네 다 알게 외치고 있습니다. 딸의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여기는 어머니.

3)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청하는 믿음(인내심) : 거절에도 모욕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희망과 신뢰를 두고 계속해서 간청합니다. 자기 딸의 회복을 믿는 믿음.

4) 겸손한 마음(자기 낮춤) : 계속해서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청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네 저는 강아지가 맞습니다. 그렇지만 강아지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습니다. ”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대로 될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도 포기하지 마세요! 이 여인에게서 오늘 한 수 배워가세요~!

이 가나안 여인의 이름은 “유스타”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감동시킨 여인>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중국에 선교한 예수회 선교사 빤또하(pantoja 1571-1618))는 자신의 저서 <칠극>(七克)에서는 “교만이 모든 죄의 근원”(집회 10,13)이라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겸손한 마음은 훌륭한 덕과 뛰어난 기술을 담는 그릇이다. 그런데, 다른 그릇은 부어 넣으면 넣는만큼 차오르지만, 이 그릇은 부어넣을수록 더 비게 된다. 그래서 부어넣을수록 더욱 더 담을 수 있게 된다.”

사람이 기쁘고 즐거우면 몸에서 자연적인 몰핀인 엔돌핀이 분비됩니다. 엔돌핀은 몰핀의 40배의 위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은 몰핀의 2000배의 위력을 지니는 호르몬인데, 누군가로부터 감동을 받을 때 분비된다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 유스타에게 감동을 받아 다이돌핀이 분비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다이돌핀은 암세포까지 없애는 위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성 요한 23세는 “사람은 저 하늘에서 만들어져서 이 땅에 보내졌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보내졌을까요? 남을 위하여 자기를 내어놓으라고.”

사제라는 단어는 Sacer + dos입니다. 거룩한 + 일을 하는 사람

거룩한 Sacer 이라는 뜻 외에도 “(자기를)희생하는”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어머니는 자기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가장 사제적인 백성입니다.

“하느님!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가나안 여인처럼 겸손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