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3주간 금요일
제가 주일미사 공지 사항 때 ‘칭찬 한마디’하는 시간을 가질 때, “당신이 최고입니다.”하며 엄지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남이 해 주면 칭찬이 됩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영성적으로는 최악이 됩니다. 그래서 칭찬 한마디가 늘 조심스럽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서 왜 카인이 아벨을 살해했을까요? 왜? 그것은 자기가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 내가 제일이라는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하여 들어야 합니다.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하고 말할 수 있느냐?”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 곧 자만심, 교만, 오만의 들보를 빼내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의견, 생각, 마음을 존중해 주지 않고 자기의 의견, 생각, 마음만 앞세우려고 합니다. 내가 세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고 맙니다. “내가 최고이다.”라는 마음을 빼내어야 합니다. 내가 최고가 되어야 하는데 누군가가 내가 차지하고 싶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를 비난, 비방하고 중상하거나 모략을 꾸며서라도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자 합니다. 이 마음이 곧 자기를 남보다 우대하는데서 오는 잘못입니다. 같은 기준의 잣대를 자신에게도 들이대야 하는데 남에게 적용하는 잣대는 엄격하고, 자기에게 적용하는 잣대는 필요에 따라서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한다면 그 사람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남보다 훌륭하다고 과찬하는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의 ‘개구리의 기도’에 보면, “사물을 아는 것은 박식하게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지혜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자신을 아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여섯 가지 감옥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비판의 감옥’도 있습니다. 늘 남의 단점과 결점만을 보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갇히는 감옥이라고 합니다. 혹시 우리는 이런 감옥에 갇히진 않았는지요.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뒷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자녀는 부모의 뒤에서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눈이 좋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성찰해서 잘 아는 사람’ 곧 ‘영적인 눈’을 지닌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남의 하찮은 잘못은 크게 보고, 자신의 중대한 잘못은 작게 본다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위선자는 ‘자기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악을 이겨내지 못해서 내적인 마음가짐과 외적인 태도가 전혀 다른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겉을 선으로 포장하더라도 그 속에 악이 가득 차 있다면 그는 위선자입니다. 주님께 겸손되이 청해야겠습니다.
“주여, 나를 고쳐 주소서. 그러면 나는 회복되리이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러면 나는 구원되리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영혼을 고쳐 주소서. 당신께 죄를 얻었나이다.”
“마음의 눈이 기도의 빛으로 밝아지게 되면, 우리 자신의 영혼 안에 쓰라림은 조금도 남이 있지 않고 하느님의 영 안에서 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성 베르나르도 아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