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25주간 화요일
찬미 예수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아마도 혈연, 지연, 학연 등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도 어쩌면 같은 레지오 팀이나 같은 단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더 끈끈한 관계성 안에서 더 친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죽어서 묻히고 그분과 함께 부활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을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과의 관계성이 제일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고 살아가느냐? 에 따라서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얼마나 소중하게 받들고 실행하는 신앙인이냐? 에 따라서 진정한 하느님과의 가족관계 속에 사는지? 아니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신앙인 인체 하는 것인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현세의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참된 생명은 하느님 안에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의 진정한 영적인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말로만 신앙인 인체 포장을 해도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 희망, 사랑이 없습니다. 오직 이 현세를 위한 탐닉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나에겐 하느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받드는 진실한 신앙, 행동으로 옮겨서 열매를 맺는 참된 신앙이 있는가? 만일 부끄럽게도 진실된 신앙이 없다면 주님께 마음을 열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저는 나약하고 불쌍한 영혼입니다. 저를 고쳐 주십시오. 저를 바로잡아 주십시오. 제가 진정 새로 나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면서 끊임없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일까?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게 무엇일까?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게 무엇일까? 늘 이것을 생각하는 것이 관상기도이며, 늘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관상 생활입니다.
우리의 참 생명은 주님의 뜻과 의지를 따라서 살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특정한 관계성 안에 있는 이들끼리만 서로 돕고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세속적인 가족이나 이익집단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에 나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특정한 나 또는 우리만의 이익에 연연할 수 없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을 진실하게 성실하게 대하며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 것이라는 결심을 해야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진실한 사람들, 성실한 사람들, 하느님 안에 있는 영적인 가족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거짓되고, 세속적이고, 악하고, 믿지 않고 박해하는 사람들까지 사랑하기에는 아직도 우리의 가슴이 좁은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더 성숙한 사람, 덕에 나아간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면 어쩌면 지금의 한계를 넘어서 더 잘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관계성의 바탕에는 하느님과 맺고 있는 관계성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느님과 잘 사귀십시오. 잘 만나십시오.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임을 생각하고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 그분이 마음에 드는 분들이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