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화요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고 악에 물들었을 때, 하느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아는 죄악이 가득 찬 세상 가운데서 작은 누룩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의 일가족을 구하시고 피조물들을 다시 구원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시려 방주를 만들라 하셨습니다.
누룩은 발효제입니다. 밀가루 반죽에 누룩이 들어가면 기포가 생기면서 전체가 부드럽게 부풀어 오릅니다.(이스트, 베이킹 파우더)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분부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은 열심한 척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가식과 교만이 가득한 이들입니다. 또 헤로데는 한 줌도 안되는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허세를 부리고 권세를 추구하며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과시욕도 있습니다.
허영심, 가식, 탐욕, 권세, 교만, 허세 등 죄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한 번 죄악에 발을 담그면 점점 더 늪처럼 빠져들고 맙니다. 죄가 왜 끈질긴가? 그것은 하나의 죄악이 또 다른 죄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을 감추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자꾸자꾸 거짓을 동원하여 처음의 거짓말을 커버하려 듭니다. “뭐 이 정도야 괜찮겠지?”, “한 번쯤이야! 남들도 다 하는데.” 하는 안일한 생각이 결국엔 계속해서 죄가 죄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한 번을 끊어 버리는 단호함과 의지가 중요합니다. 작은 합리화가 더 큰 합리화와 정당화를 동원하게 만듭니다.
제자들은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배 안에는 빵이 한 개 밖에 없습니다.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는 제자들은 얼마 전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습니다. 바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말입니다. 또 빵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도 잊어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주님께서 나에게 해 주신 게 뭐가 있냐고 따지고 듭니다. 아쉬울 때만 주님을 찾고 그 순간만 모면하면 언제 주님을 찾았느냐는 듯 금방 다른 데에 한 눈을 팔고마는 우리 자신을 봅니다. 세상의 헛된 것에서 힘을 얻고저 하는 바리사이나 헤로데나 우리나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하면 그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든간에 분별없이 아무나 찍어 주고, 뽑아줍니다. 그리고는 속았다고 돌아서 욕을 합니다.
경제와 이기적 편견이 가득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경제가 중심에 서면 설수록 인간은 소외되고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소외되고 또 인간의 정신적인 면은 타락하고 맙니다. 채무만 점점 늘어갑니다. 경제보다도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인간이 중심에 서야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만 중요한 줄 알지요. 사실은 모든 게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의 욕심이 부추기는 일인데도 그것을 조장한 사람은 숨어버리고 경제탓만 하는 세상입니다. 경제발전의 꿈은 악마의 망상입니다. 경제를 통하여 사람이 행복해야 하는데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은 사람을 소외시키고 경제라는 허상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세속 사람들에겐 빵이 우선이겠지만 그러나 신앙인들에겐 그 빵을 많게 하고 그 빵을 주시는 하느님이 말씀과 뜻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