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 주일 강론

찬미 예수님!

샌디에고 한인성당 공동체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날이 좀 흐리군요.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공동체의 형제자매 여러분과 가정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3주간 미사를 중단합니다. 이후 11월 14일(토) 오후 7시 30분 미사부터 재개할 예정입니다.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꿋꿋하게 인내하며 서로 기도로 돕는 것도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정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앙의 힘으로 잘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힘내십시오!

예수님 시대에 사두가이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산헤드린 의회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였습니다. 먼저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형사취수제’를 가지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들은 하늘나라에서 천사들과 같아져서 시집장가가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오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율법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듭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6,5)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19,18)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있다.”(마태22,37-40) 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인에겐 율법이 248개의 명령과 365개의 금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명령과 금령을 합쳐 613조항 입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의학에 바탕을 두고 사람 뼈의 개수를 248개로 알고 있었고, 또한 일 년은 365일이기 때문에 일 년 내내 하느님의 율법을 뼈에 새기고 살아가자는 취지에서 율법 조항을 613개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답변은 이웃사랑을 하느님의 사랑과 같은 차원으로 끌어올리신 말씀이었습니다. 사랑은 먼저 하느님을 향해야 합니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온 세상과 우리의 주님으로 선언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유일한 하느님!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충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사랑을 바쳐야 합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 특히 신앙인들조차도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사랑해야 함에도 자기애(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가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핑계만 되면 주일미사도 빠지고, 기도 생활도 설렁설렁합니다. 평소에는 하느님을 찾지도 않던 사람들이 어려울 때나 힘들 때만 하느님을 찾습니다. 나이롱(날라리) 신자들은 주님의 기도를 전반부는 빠트리고 바치지 않고 후반부만 기도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당에 오는 것도 주님께 참된 흠숭의 예배(미사)를 드리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성당에 옵니다. ‘자신의 건강’, ‘자신의 성공’, ‘자신의 가정의 평화’, ‘자신의 축복’, ‘자기만족’, ‘자아 성취’를 위해서 성당에 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잘 성찰해 봐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나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필요할 때만 찾고 사랑하는 사람인가?

이태리의 조각가 <디 지오바니>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이며 <도나텔로>의 제자입니다. 지오바니는 어린 미켈란젤로를 처음에 보자마자 그의 재능을 알아봤습니다. 그가 제자로 선택한 미켈란젤로에게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재능은 값싼 것에 불과하다. 노력과 헌신이야말로 정말 값진 것이다.” 지나간 옛날에(왕년에) 내가 어땠다는 것을 말하기보다 지금도 최선을 다하여 헌신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훌륭한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열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마감하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또 이웃사랑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며 살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봉사, 자선 등도 실천해야겠지만 또 이웃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서로 지켜줘야 할 것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묵은지>는 3년~5년 정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통풍이 되는 곳에서 숙성이 된 김치를 가리킵니다. 한국에서는 묵은지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5월에서 6월(장마 전에)에 생산되는 갯벌 천일염을 써야 하고, 10월~12월에 수확하는 고랭지 겨울 배추를 사용해야 합니다. 찬 서리를 견뎌온 배추, 따가운 햇볕에 말려진 소금, 그리고 땅속이나 계곡이나 저온저장고에서의 3년 이상 숙성된 그 맛이야말로 숨길 수 없는 깊은 맛을 내는 비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 생각이 듭니다.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바라기 마음이 변함없도록 인내하며 숙성된 사람만이 그리스도의 계명에 충실한 사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생떽쥐뻬리의 <어린 왕자>에 보면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어서 그래!”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천주교회는 성숙한 신앙인, 숙성된 묵은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참된 신앙인들이 있기에 세상에 구원의 표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디 우리 사랑의 첫 자리가 <하느님>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 마음이 변치 않고 영원히 간직되기를 함께 간구하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