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봉헌 축일
교회는 오늘을 빛 중의 빛이신 예수님을 기념하여 이 축일을 성대하게 거행해 왔습니다. 신자들은 손에 손마다 촛불을 들고 성대하게 빛의 행렬을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온 세상을 밝히는 참된 빛,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우리 또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했던 것입니다.
<봉헌> Oblationes
봉헌이란,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교우들이 자발적으로 바친 예물을 의미합니다. 특히 미사, 성사 집행, 다른 전례 의식이나 신심 행위의 경우에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봉헌의 근본적인 목적은
1) 하느님께 대한 흠숭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봉헌을 통해 하느님의 최상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구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죄에 대한 속죄의 행위로써 하느님께 어떤 예물을 봉헌합니다. 봉헌의 2차적인 목적은 예식을 유지하고, 그 예식에 위임된 직무자들의 생활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2) 봉헌은 자기희생을 요구합니다.
3) 봉헌은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봉헌이란 하느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는 맘으로 하느님께 되돌려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봉헌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성모 취결례 축일) – 주인공이 성모님이었음.
모세의 율법에는 「정결례」라는 것이 있어서 아기가 태어난지 40일이 되면, 산모는 성전에 나아가 몸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레위 12장1절에서8절>에 보면, 사내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40일 동안, 계집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80일 동안 불결한 기간으로 여겨, 그 기간이 지나면 새끼 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집이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 두 마리를 속죄의 제물로 사제에게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 여인이 부정을 벗게 되어 정결하게 된다고 여겼습니다.
<탈출기13장> 첫 아들은 하느님의 소유로 여겼다. 그래서 민수18,16의 규정대로 속죄의 돈(속전)을 내고서 첫 아들을 돌려 받아야 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이러한 구약의 율법을 충실히 따르려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성전에 들어갈 때, 성령의 인도를 받고 마중 나온 백발의 예언자 시메온을 만나게 됩니다. 시메온은 가난한 부모의 아기에게서 세상의 구세주를 보고는 하느님을 찬미하게 됩니다.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는 『이교 백성들을 밝히는 빛』이라고 칭송하면서 구세주를 만나 뵈온 기쁨에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공자도 ‘조문도 석사 가의’라 했습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은 곧 구세주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 은 구세주를 만나 영원한 안식과 기쁨을 누리기 위해 한 그리스도교 신자가 겪는 엄청난 고통과 고난과 희로애락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어둠에서 벗어나 빛이신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의 빛을 우리 안에 간직함으로써 구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동방교회는 이 봉헌축일(할례)을 주님 성탄사건의 마무리로 여겼고, 서방교회는 촛불행렬을 통하여 속죄와 참회의 의미를 강조하며 성모님을 통하여 세상의 어둠을 없애는 빛으로 오신 주님을 경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어두운 이유 중 하나는 저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하여 물질에 집착하는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자기의 것을 내어 놓아 나눔으로써 이웃의 궁핍을 도우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안의 어두움은 자기 자신만 구원을 받고, 자기 자신만 은총을 받고 살려는 신앙의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봉사하려고 하지 않고 봉사 받으며 살려는 신자가 많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 빛을 내겠지…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이 어둠을 없애 주겠거니…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하느님께 주권이 있음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자신, 하느님 뜻대로 재화를 사용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과거에는 유리잔이 가득차면 흘러 넘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리잔이 가득차면 마술처럼 유리잔이 더 커져 버려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돌아갈 몫이 없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