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01252022

예수님의 7터치(성령터치2)

2) 겸손한 사람이 기적을 경험합니다.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던 요한을 찾아가신 이유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자존심, 경쟁심, 반항심을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서 자존심, 반항심, 경쟁심 등의 모든 사심을 버려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이 지니신 인격들 가운데에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체면이나 지위 따위를 생각하지 않으시고 세례자 요한을 찾아와 겸허히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겸손하게 섬길 때 하느님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세례는 원래 죄인이 회개한 후에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짓지 않으신 예수님께서 요한을 찾아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세례를 받아야 하는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것도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서였습니다. 이 모습에서 우리는 겸손과 자기희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둘째, 세례자 요한의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을 때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 존재했고, 그분의 앞마당을 쓸고 있었고, 그분이 가시는 길을 평탄케 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오히려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셨으니, 요한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마태 3,14). 그러나 예수님의 태도는 강경하셨습니다. 극구 사양하는 세례자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마태 3,15).
예수님께서 억지로 고집을 부리신 것이 아닙니다. 간혹 우리의 믿음은 신념이거나 고집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상처를 받아가면서 끝까지 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장하신 것은 아집이 아니라 인류 구원을 위한 애정, 사랑, 헌신, 눈물이었습니다. 영적인 사람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의도를 즉시 알아차리고 곧 태도를 바꿉니다. 그는 예수님께 세례를 허락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겸손의 전형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진정한 겸손은 세례자 요한을 찾아오신 것이고, 세례자 요한에게 진정한 겸손은 예수님의 요구를 허락한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이란 자신이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하십시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이 행하실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