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02012022

예수님의 7터치(성령 터치 3)

3) 순종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일을 이룹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격이 있어서 예수님께 세례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세례를 드릴 자격이 없지만, 예수님의 명령이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세례를 드리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보고, 세례자 요한의 순종을 봅니다. 진정한 순종이란 무엇입니까? 자격이 있어서 하는 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자격이 없지만, 내가 그럴 입장도 아니지만,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또한 이것이 인간의 겸손입니다. 하느님의 겸손은 예수님이 인간에게 세례받은 예수님의 겸손이고, 인간의 겸손은 자격은 없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세례를 준 세례자 요한의 순종입니다.
간혹 우리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주일날 공지사항을 하면서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하라고 하면, 마치 본당 신부를 위해서 소공동체 모임에 나온 듯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봉사도 선심 쓰듯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봉사도, 순종도, 겸손도 아닙니다.
“하느님이 어떻게 내 시간을 다 쓰십니까? 나 같은 사람의 시간도 하느님이 쓰십니까? 하느님, 어떻게 제 돈을 사용하십니까? 너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주님이 주셨던 것, 주님께서 필요하시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시간도 재능도 재물도 모두 주님 것이 아닙니까?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제가 자격이 있거나 능력이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이 돈은 하느님께 드릴 만큼 떳떳한 돈도 아니고, 저의 봉사도 떳떳하지 않지만, 주님께서 쓰신다고 하시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하느님께 드리면서 ‘한다. 못한다.’, ‘된다. 안 된다.’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마치 하느님께 뭘 베푸는 것처럼, 뭘 드리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순종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 저는 돌멩이만도 못한 존재인데 제 손과 발을 쓰신다고 하시니, 너무나 두렵고 떨립니다.’라고 했던 분이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폼 잡고 세례를 주었을까요?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 기절할 정도로 괴롭게 세례를 주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봉사입니다. 이것이 헌신이고 순종이며 겸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다른 무엇이 아닌 순종을 통해 하느님의 일을 이루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