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04122022
예수님의 7터치(침묵터치3, 하느님 앞에서 혼자 되기)
4) 하느님 앞에서는 혼자가 되십시오.
현대인의 특징은 항상 바쁘고 분주하며 피상적이고 결과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기 좋은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사버립니다.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고 쾌락으로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껍데기 인생이 되어갑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보호받고 싶어 합니다. 아무리 권력이 있고 재물을 가진 사람도, 누군가 자신을 인정해 주고 보호해 주며 사랑해 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느님께 인정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인정받는 것은 고독하고, 외로우며 투쟁하는 삶의 연속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자꾸 주위로부터 동의를 구하려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사랑받으려는 본능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말해 중요한 것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엎드려 오랜 침묵과 기다림 속에 단식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5) 홀로 기도해도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제자들을 강 건너로 먼저 보내신 예수님은 저녁 식사 시간쯤에 시작해 새벽 4시까지 기도하셨습니다(마르 6, 48). 이 시간은 가장 잠이 많이 오는 시각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건너편으로 가고 있었고, 예수님은 기도하시는 중에도 제자들의 상황을 살피셨습니다. “제자들이 배를 젓느라 몹시 애를 쓰고 있는 것을 보시고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서 가시려고 하였다”(마르 6, 48).
잠깐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역풍 때문에 가지 못하고 제자들이 곤혹스럽게 파도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18시-19시)에 출발해서 새벽 4시까지 노를 젓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겠습니까? 바로 이때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기도하지 않고 배를 타고 힘들게 노를 젓는 제자들을 산에서 보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시다 이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시고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배가 없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배가 없으면 걸어서라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환경은 우리에게는 중요하긴 하지만 예수님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파도 속에 갇혀서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있을 때, 주님은 하느님의 옥좌에 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계속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계속 보십니다. 그러므로 안심하십시오. 고난을 겪을 때는 늘 혼자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주무시는 것 같고 하느님이 안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어머니는 천둥치는 소리는 못 들어도 갓 태어난 아이의 뒤척거리는 소리는 듣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신음소리를 들으십니다. 우리의 한숨 소리도 듣고 ‘하느님은 나를 잊었겠지’,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가 있겠는가?’라고 생각할 때도 하느님은 거기에 계십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지켜보고만 계실까요? 아닙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기도를 멈추고 나오십니다.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