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12142021
<적극적인 미사참례>
교회법 제1245조는 “신자들은 주일과 그 밖의 의무 축일에 미사에 참여할 의무가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교리서」(2181항)에서도 미사참례 의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74조 4항에 보면, 미사나 공소예절에도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대신에 묵주기도, 성경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득이한 경우란 직업상 또는 신체적 환경적 이유로 주일 미사에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 출근하는 경우, 본인이 병원에 입원했거나 중한 병으로 집에서 나오기 어려운 경우와 그런 가족을 간병·간호하는 경우, 직장에서나 가족·친지들과 함께 야외행사나 여행, 경조사에 참석하는 경우, 업무상 해외로 출장을 가는 경우 등을 말합니다. 이 경우 주교회의에서 제안한 대로 ‘묵주기도 5단’이나 ‘그 주일 미사의 독서, 복음 봉독’, 또는 ‘희생과 봉사활동’ 등으로 주일 미사 의무를 대신할 경우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교구마다 ‘주님의 기도 33번’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레지오 교본에서도 “되도록 많은 신자가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례하여 순수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성체를 영함으로써 나날이 새로워져, 주 그리스도의 이 위대한 선물에 대해 감사드려야 한다.”(레지오 교본 37장 12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미사참례를 통하여 예수님을 모시는 기쁨을 누려야합니다.
그런데 가끔 주일미사나 축일미사 전날 미사참례를 하거나 혹 그날 혼인미사나 장례미사에 참례해도 미사 의무를 다하는 것인지를 묻는 분이 계십니다. 물론 의무를 채우는 것입니다. 교회법 1248조 1항은 “미사 참례 계명은 주일이나 의무 축일 당일이나 그 전날 저녁에 어디서든지 가톨릭 예식으로 거행되는 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이행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일과 큰 축일은 전날 저녁부터 본 날 자정까지 축제를 지내는 전통에 따라서 이 법이 성립됩니다. 우리는 미사참례의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미사 참례를 의무로써 참례하기보다는 주님을 모시고 흠숭하는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참례해야 합니다.
모든 미사는 십자가상의 제사를 유혈이 없는 형식으로 기념하고 재현합니다. 또한 미사는 오늘 나를 위해 당신을 내어놓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리고 산 이와 죽은 이를 기억하고, 천상과 연옥의 신자들이 함께 드리는 흠숭의 행위입니다. 따라서 의무를 따지기에 앞서 주님과의 온전한 일치를 이루는 데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미사나 연미사라고 구별합니다. 이것은 미사의 종류가 아닙니다. 특별히 미사를 청한 사람의 지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미사는 생미사이면서 또한 연미사이기도 합니다. 산 이와 죽은 이를 동시에 기억하는 것이 미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사를 청하는 사람이 지향을 밝힐 때 ‘ㅇㅇㅇ을 위한 위령미사’, ‘ㅇㅇㅇ를 위한 청원미사’, ‘ㅇㅇㅇ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미사’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혼인미사’, ‘장례미사’라고 하는 것도 미사의 종류가 아니라 한 미사 안에서 장례 절차나 혼인 절차를 삽입한 미사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주일이나 의무 축일에 거행되는 경우에 혼인이나 장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신자가 참례해도 미사참례 의무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성탄이나 부활 성야미사를 봉헌한 사람이 다음날 낮 미사에 꼭 참례해야 하느냐? 그것은 스스로 주님과의 만남, 하나 됨을 이루는 관계 안에서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의무차원에서 미사를 봉헌해야 합니까?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께서 끊임없이 당신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도록 성체성사를 통해 오시는데,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하시며 생명의 양식으로 오시는데,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다.’고 선언하시는데 왜 아직도 의무로써만 미사참례를 해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미사참례를 통해 말씀을 듣고 자주 성체를 모시고 또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힘을 말씀과 성체에서 얻습니다. 적극적인 미사참례 안에서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