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08302022 부르심, 성소 (행복에 이르는 길, 각자의 성소가 있다.)
‘소명’이란 라틴어로는 호출, 초대라는 뜻이지만, 어떤 특별한 부르심으로 이해됩니다.
사도 바오로에 의하면 부르심의 궁극목적은 거룩하게 되는 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성소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도록 초대되었습니다. “나무는 나무가 됨으로써 하느님을 닮고, 물총새는 물총새가 되어감으로써 하느님을 닮으며, 나는 참된 내가 되어감으로써 하느님을 닮는 것이다.” 즉 성화와 구원의 문제는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참된 나 자신을 찾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소’는 어떤 특정한 일이나 생활방식이 아니다. 미리 맞추어 놓은 옷을 입는 것도 아니다. ‘성소’란 성화에 이르는 길을 닦는 것이다.
성 안토니오는 사막에서, 성 베네딕토는 수도원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는 철저한 가난을 통해 그들만의 고유한 길을 찾았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길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의 길은 기존의 방법을 거부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무언가가 다른 길을 찾도록 만든 것이다.
샤를 드 푸코는 퇴폐적인 프랑스 기병대 장교였지만 알제리의 한 은둔소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발견했다. 그는 나자렛 마을 목수로서 드러나지 않게 살았던 그리스도의 ‘숨은 삶’을 닮으려고 했다. 그는 말한다.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한 모든 영혼에게 존재를 다해 사랑하라고, 현세와 다음 세상에서 그렇게 사랑하라고 부르신다.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거룩하고 완전해지라고 초대하시며, 당신을 더 가까이 따르며 당신 뜻에 복종하라고 부르신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든 영혼이 똑같은 일로 각자의 사랑을 당신께 보여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으신다. 똑같은 사다리로 천국에 오르고 똑같은 방식으로 선을 행하라고 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천국에 이르는 나의 길은 어떤 길인가? 나는 어떤 삶으로 나 자신을 성화시켜야 하는가? 샤를 드 푸코의 물음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일로, 어떤 자리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마땅히 되어야 할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는가? 토마스 머튼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자기 자리에서 저마다 자기 자신을 꽃피울 수 있을 때 행복’해진다. 그러기까지 우리는 온전히 행복해질 수 없다. 성경에서 노아, 아브라함, 야곱, 사무엘과 같은 신앙 선조들이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응답하는 데서 자기 정체성과 목표를 깨닫고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도전은 모세처럼 불타는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데려오라는 부르심에서 인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처럼 무너진 교회 안 십자가에서 “내 교회를 세워라.”라고 하는데서 오는가?
성인들은 자신이 받은 부르심이 하느님한테서 온 것이라 느끼고 전적으로 응답했다는 점이 특별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