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 ‘종말’(the end of time)에 대한 예언은 언제가 맞을까요?

우리는 교회의 달력인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종말’에 대한 성경 말씀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주일 복음은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심판’(마태 25, 32-46)에 대해, 화요일 복음은 ‘성전 파괴와 재난의 시작’에 대해 조금은 무서운 말씀을 듣습니다. 독서 말씀은 계속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렇다면 종말에 대한 예언은 언제가 맞을까요? 아쉽게도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해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알지 못하며,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4, 36). 가톨릭 교회 역시 “오직 아버지만이 그 시간과 날짜를 알고 계시며, 그분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결정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40항)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알지 못하는 ‘종말의 때’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종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종말을 미래 언젠가 있게 될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 경륜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 34)는 주일 복음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그 완성인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강생으로 ‘이미(already)’ 시작되었지만 ‘아직(not yet)’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다시 오시는 종말을 통해 ‘완성’(fullness)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종말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때의 “최후의 심판(공심판)은 사람들이 저지른 모든 불의에 대하여 하느님의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드러낼 것이며, 당신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40항).

‘내 뜻대로 안되는 이놈의 세상 빨리 망해라’가 아니라 우리는 ‘복된 희망’을 품고 창조의 완성인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애덕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더 기다리면 기다리실수록 죄인들이 뉘우치고 주님의 자비를 받아들일 기회는 많아집니다. 아마도 그것이 예수님께서 아직 재림하시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가르침은 기다리며 애원하는 ‘주님 자비에 대한 믿음’과 ‘복된 희망’(티토 2,13), ‘애덕의 실천’(마태 25,34-40)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종말에 대한 호기심이나 두려움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을 잘 준비하며 회개와 애덕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 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