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12062022
믿음의 크기만큼 받는다.
아일랜드 출신의 존 페이턴은 1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부모의 영향으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랐다. 성년이 되어 매리와 결혼을 한 존 페이턴의 신심은 변함이 없었다. 신혼 첫날부터 둘은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이면 난롯가에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정성껏 바쳤다.
그는 딸 다섯, 아들 넷의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저녁에는 항상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묵주기도를 바쳤고 모범적인 성가정을 꾸려나갔다.
아일랜드 서부의 가난한 해안 지역에서 살던 존 페이턴 가정은 자녀들이 성장할수록 가정 형편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이런 집안 형편을 잘 알고 있던 그의 자녀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하나둘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첫째와 둘째 딸은 미국으로 건너가 일자리를 구했고, 고향의 부모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 번 돈을 아껴 쓰며 꼬박꼬박 송금하였다.
여섯째인 페트릭도 동생 톰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낯선 미국 땅에서 고생하던 두 형제는 힘든 이민 생활 가운데서도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고된 이민 생활을 하던 페트릭은 수사신부가 되고자 ‘성 십자가의 수도회’에 입회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페트릭의 부모는 너무 기뻤다. 그들은 자신의 가정에 사제 성소의 씨앗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었다.
수도회 입회 후 신학교에 입학한 페트릭은 착실하게 신학교 생활을 하며 사제의 길을 순조롭게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심한 기침과 각혈을 하게 되었다. 그를 진찰한 의사는 폐결핵 말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때는 1938년, 그 당시에는 효험이 있는 결핵 치료제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안정을 취하고 식이요법을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의사들도 그를 포기하려 하였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좌절하는 젊은 청년을 볼 수만은 없었던 병원 측 의사 세 명은 심사숙고 끝에 성공률은 낮으나 수술을 시도해 보기로 결정하였다. 세 차례의 대수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그는 평생 불구자로 살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교회법상 사제가 될 수 없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그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가 거의 체념하고 있을 때 페트릭의 신학교 윤리학 교수인 하거티 신부가 병문안을 왔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은 페트릭의 운명을 획기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성모님께서는 자네가 믿는 만큼 들어주실 것이네. 성모님을 50% 믿으면 성모님도 그만큼 해주실 것이고, 성모님을 100% 믿으면 성모님도 100% 해주실 것이네. 믿는 만큼 받는 것이라네”.
하거티 교수 신부의 이 말은 페트릭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맞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기도했지만 내가 성모님을 100% 믿고 기도한 적은 없었구나”. 하거티 교수 신부가 떠나자 페트릭은 열심히 기도했다. 하지만 어제와는 전혀 다른 기도였다. 기도한 지 6일 후 그의 건강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2주일 후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유독한 병균이 사라져 병이 완치되었고 병은 재발이 되지도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함께 바쳤던 숱한 묵주기도를 떠올렸다.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기도를 하면서도 충분한 응답이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결국 꿈꾸던 사제가 되었고, 동생 톰도 형을 따라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참된 기도 생활과 기도의 힘을 전파하고자 ‘가족 묵주기도 운동’을 창안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예수님을, 성모님을 과연 어느 정도로 확고하게 믿고 있는가? 그분께 기도하고 산다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분을 믿고 기도하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믿음의 크기, 깊이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