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12202022
스케일이 큰 사람
우리는 보통 통이 크다는 말을 한다. 스케일이 큰 사람을 말한다.
스케일이 크다는 것은 마음이 넓다는 얘기하고 일맥상통한다.
마음이 큰 사람은 보통 웬만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받아들인다.
마음이 작은 사람은 남을 잘 용서하지도 못한다.
스케일이 큰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늘나라 가기 힘들다.
남을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스케일이 굉장히 크다.
십자가에서 원수도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결국 영성의 길을 간다는 것은 스케일이 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스님들이 도를 닦아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도 결국은 스케일이 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온갖 것들을 다 마음에 품을 정도의 스케일이 큰 사람이 되는 길이다. 참으로 자비한 인간이 되는 길이다.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친절을 베풀고, 사랑을 베푸는 길을 간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인생은 스케일이 큰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사람을 받아들인다.
모든 이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사실, 한국인들의 사회에서 요즈음은 스케일이 큰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
나와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보기 드물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그냥 적으로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의견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그래서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존중받는 세상이 아름다운 것이다. 꽃도 한 가지 종류, 한 가지 색만 있다면 그곳에 무슨 아름다움이 있겠는가?
문화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문화가 어울어질 때 아름다운 문화, 풍요로운 문화가 꽃피는 것이다. 획일적인 문화는 사람 숨을 막히게 한다.
참된 사랑은 나와 다른 문화, 나와 다른 의견에도 활짝 문을 열고 존중하고 경청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오늘날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이것이다.
바로 관용의 문화이다.
스케일이 큰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남의 다른 의견도 존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예수님처럼 스케일이 큰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다양한 의견을 포용하고, 이를 아우르면서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한국에는 아쉽다.
당신을 죽이는 원수도 사랑하신 예수님보다 스케일이 더 큰 사람이 있었을까?
우리 일생은 우리 마음의 스케일을 키우는 과정이다.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된다.
성령의 도우심과 예수 성심의 도우심과 성모님의 도우심이 절대로 필요하다.
나약한 우리 마음이 커지는 것은 우리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의 영역이 아니라 영의 영역이다.
성령의 영역이다.
하느님의 자비로 가능한 것이다.
바늘 같은 마음이 온 우주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는 것도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스케일이 큰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될 때,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만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될 때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한 일이다.
우리도 스케일이 큰 사람이 되어 만인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이다.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자비로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마음을 비우는 것밖에 없다.
욕심을 버릴 뿐이다.
그리고 맡길 뿐이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마음에 퍼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