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화 03292022

(침묵터치1 : 침묵은 영혼의 언어이다.)

3. 침묵 터치 : 침묵은 영혼의 언어이다.
이미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와 활동에서 두 가지 터치를 살펴보았습니다. 성령터치와 말씀터치입니다. 성령터치를 통해서 기적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말씀터치를 통해서 마귀의 세력(어둠의 세력)을 꺾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곧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마귀의 세력을 꺾은 후부터 기적을 일으키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기 시작하자 수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지자 사람들은 갖가지 병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과 간질병자들과 중풍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자 갈릴래아와 데카폴리스와 예루살렘과 유다와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온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마태 4, 23-25).

<마태오 복음 5 – 7장은 예수님이 산에서 설교하신 내용을 담았다고 흔히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들은 예수님의 설교는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의 가르침을 듣고 놀랐습니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태 7, 29).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령터치와 말씀터치를 이루신 후에 설교와 가르치심으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1) 환호와 갈채는 항상 유혹을 동반합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활동에는 항상 유혹과 시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기적을 베푸시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에 따른 승리감과 도취감입니다. 보통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면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여유가 생기고 환경이 좋아지면 겸손은 교만으로 변하고 감사는 불평으로 바뀌게 됩니다.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목은 점차 굳어집니다.
대부분의 위기는 실패했을 때가 아니라 성공했을 때 찾아옵니다. 병들 때가 아니라 건강할 때, 무명할 때가 아니라 유명할 때 위기가 찾아옵니다.

예수님의 위기도 군중들 앞에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을 때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놀라워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많은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이 좁은 지역임을 감안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매스미디어의 발달이 없었다고 해도 예수님의 기적에 관한 소식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한 동네에서 다른 동네로 신속하게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호기심 반, 놀라움 반으로 마구 몰려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하나의 신드롬이 생겼고 주님의 기적으로 충격을 받아 사회는 패닉 현상에 빠져들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예수님께 집중되었고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다가온 위기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마귀의 시험보다 더 위험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일 마귀라면, 그 존재를 알고 대처하기 때문에 어쩌면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신 일의 성공에 대한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는 어렵고 위험한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관리 시스템을 꼭 가져야 합니다.

자기 안에 찾아온 이 위기를 예수님은 어떻게 관리하셨을까? 4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활동의 성공과 사람들의 환호에서 오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 관리 시스템을 갖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터치와 말씀터치 이후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길은 인기 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공 안에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마르 1, 35). 예수님은 사람들을 떠나 조용한 곳으로 가셔서 고독의 자리를 만드시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만드는 작업을 홀로 하시면서 침묵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침묵 터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