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4주간 금요일 강론(김 바오로 신부)

<초막절에 대하여> : 유대인들의 초막절은 농사력이 끝나는 가을에 큰 기쁨으로 지내던 축제 중의 하나입니다. 유대인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며 생활하던 것을 기억하며 언약을 새롭게 하는 절기입니다. 보통 9월 말에서 10월 초에 걸쳐 8일간 행해지던 축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방 32km 이내에 거주하는 모든 성인 남자들은 법적으로 참석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사람이 보여 준 반응은 아주 다양합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예수님 그분을 내 삶에 어떤 분으로 여기고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는 아주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분을 누구로 여기느냐? 에 따라서 내 앞으로의 삶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 시대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여겼는지 보겠습니다.

1) 예수님의 형제 친척들 : 반 오락적, 반 경멸적 태도로 예수님을 시험해 보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구세주로 믿지도 않는 상태에서 예수님께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종용합니다.

2)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반응 : 예수님에 대하여 증오의 태도를 보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자기들의 특권을 지키고 늘리기 위한 가르침이었고, 백성을 억압하고 지배하기 위한 가르침을 폈습니다.

가) 바리사이들 : 자기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조상들의 율법, 규정, 규례를 예수님께서 무시했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들의 관습과 제도를 하느님의 율법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나) 사두가이들 : 이들은 거의가 제사장들이었고, 로마와 손잡고 있었으며 정치적인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점령국인 로마의 관리와 협력하고 편안하게 안주하며 사치스런 생활을 누리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메시아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오면, 자기들의 정치적인 위치나 위상이 산산조각이 나고 재산상의 안전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구원보다는 현세적인 자신들의 안일 무사함을 위하여 신앙에 있어서 모험적인 태도를 취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3) 군중들의 반응 : 군중들의 반응은 이중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예언자나 메시아로 여기면서도 그분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신들의 욕심을 채워줄 현세적인 메시아 곧 자기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로 여겼을 뿐입니다.

4) 실제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백성을 살리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참된 가르침이었고, 율법을 능가하고 초월하는 가르침, 율법을 완성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를 아는 지식은 참된 지식, 참된 앎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도 아들을 아는 참된 앎,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삶에 있어서 꼭 있어야만 하는 절대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을 향한 구원의 행위를 포기하지 않고, 항상 최고의 것을 바라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 13)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이거나 또는 최고인 줄 합니다. 또 때로는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거나 감옥과도 같은 것에 갇혀 있으면서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드러난 신천지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탈퇴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사람을 교묘히 이용하는 사이비종교인지 본인도 몰랐다고 뒤늦게 후회하고 탈퇴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에는 스스로를 가두는 여섯 가지 감옥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자기 도취의 감옥 : 내가 최고다. 내가 제일 잘났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 공주병 환자들. 내가 제일 이쁘다. 나 보다 이쁜 년은 인정할 수 없다. 왕자병. 내가 젤 멋지다. 다른 놈은 인정할 수 없다.

둘째, 비판의 감옥 : 다른 사람의 단점, 결점만을 보며 남을 비판하고 흉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생각과 말만 하는 사람은 비판의 감옥에 갇힌 사람입니다. 비판만 하고 대안은 없는 사람.

셋째, 절망의 감옥 : 항상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만 바라보면서 불평, 불만, 절망의 언어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희망의 말을 하고 밝은 면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언어습관 경계해야 합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처럼 먹을 가까이하면 검게 물들고 맙니다.

넷째, 과거 지향의 감옥 : 아! 옛날이여! 왕년에 씨! “내가 왕녀에 말이야 어마어마했었지!” 이 감옥에 갇힌 이들은 그때가 좋았었지. 과거만 추억하며 현재를 낭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노인은 추억을 곱씹으며 살고, 젊은이는 꿈과 희망을 품으며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에 연연하고 발전이 없는 사람들이 과거 지향의 감옥에 갇힌 사람입니다.

다섯째, 선망의 감옥(비교의 감옥) :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라는 속담처럼 남의 떡을 부러워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내 떡의 소중함은 모르고 남의 떡만 바라보며 부러워하며 삽니다. 또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위아래 중에 누구랑 비교하면 행복할까요? 누구랑 비교하면 불행할까요?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죠!

여섯째, 질투의 감옥 : 이 질투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픈 사람들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처럼 자꾸만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고, 자꾸만 헐뜯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옭아매는 이러한 감옥에서 탈출하여 자유롭게 여유롭게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예수님을 진정한 내 삶의 주님으로 믿고 그분의 뜻과 계명에 순종하며 참된 신앙인으로 살아갑시다. 내 삶에 이용하려는 목적을 버리고 참되게 섬기고 의탁하며 살 때 참으로 행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