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3주간 화요일
『소멸의 아름다움』 (필립 시먼스 저, 도서출판 나무심는 사람들)
이 책의 저자는 한때 장래가 촉망받는 문인으로서 이제 막 생의 활기찬 걸음을 내딛으려던 순간, 갑자기 “죽어가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 암담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한순간에 장밋빛 꿈을 모두 접게 된 저자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를 겪게 되었는데, 그로 인한 고통이나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원망스러웠고, 루게릭병이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에 걸려 추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자신은 이토록 극심한 고통 속에서 번민하고 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즐기고 떠들어대는 것, 역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극심한 고통 가운데를 헤매던 어느 순간 저자는 자신의 삶 한 귀퉁이로부터 참으로 놀라운 은총이 스며들어옴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은 결국 성장을 위한 신비”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진실로 용서하고 진실로 마음을 열면 이 세상은 문제 덩어리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저자는 행복한 삶을 엮어가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삶의 원리는, “낙법 배우기(learning to fall)” 임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머잖아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은 사라지므로 미리 낙법을 배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의 좌절, 체력이 저하,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병이나 죽음,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인생의 낙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제시하는 낙법이란 다름 아닌 “놓아 버림”, “자신과 이웃에 대한 놓아 버림”, 다시 말해서 자신과의 화해이며, 이웃에 대한 용서입니다.
우리가 평소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 성취,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놓아버리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억울함, 상처, 분함, 복수심, 시기심, 경쟁심 등을 모두 놓아버리는 순간, 다시 말해서 용서하는 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당시에 랍비들은 세 번까지만 용서하고 네 번째부터는 용서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볼 때에 일곱 번이면 충분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에 한계를 긋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인간이길 바라지 말고 하느님처럼 되라는 요구입니다.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바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정과 신뢰를 저버린 사람을 용서해야 할 때, 그러할 것입니다.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모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확고하게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하실 것이다.”(마태 18, 35)
심판은 우리 인간의 몫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을 알면서도 인간적인 알량한 미움, 원망, 복수심에서 자꾸만 내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고 하는 어리석은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려면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고 심판하는 것을 하느님께 맡겨야 합니다.
오늘 제 1독서 다니엘서에 불타는 가마 속에서 바치는 세 소년의 기도를 우리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바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저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저희는 오늘 온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백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저희에게는 제후도 예언자도 지도자도 없고, 번제물도 희생 제물도 예물도 분향도 없으며, 당신께 제물로 바쳐 자비를 얻을 곳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 주소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 당신의 크신 자비에 ᄄᆞ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
세 소년은 과거의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고는 철저한 자기 반성(역사적 성찰)후에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주님께 바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받아주시는 가장 좋은 제물입니다.
1945년, 『레이븐스브룩 포로 수용소에서 발견된 글』이 있습니다.
“주님, 선의를 지닌 사람들 뿐 아니라 악의를 품은 이들을 기억하소서.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고통스러운 잘못일랑 기억하지 마소서.
오히려 우리가 희생을 치르고 얻은 열매들을 기억하소서.
그 희생에서 우리의 동료애, 충실, 겸손, 용기, 관대함, 위대한 영혼이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심판 때에 우리가 거둔 그 모든 열매로 그들을 용서하소서.”
에버렛 워딩턴, 「사랑을 키우는 햇살, 용서」 中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 용서하는 일입니다. 자기애를 멈추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이웃에 대한 사랑과 용서를 통하여 예수님을 닮고 하느님 아버지를 닮는 사람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