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4주간 (화) 요한 5, 1-3;5-16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사제는 혼자 살기 때문에 때때로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손이 닿지 않는 등에 파스를 붙일 때가 가장 곤란합니다. 또 등이 가려울 때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이 가려울 때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제관 필수품 중 하나가 바로 효자손입니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은데 몸이 병든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양 문’은 예루살렘 성전 북쪽에 있는 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무순례 때 희생제물을 바치려고 이 문 곁으로 양들을 데려간 것에서 이름이 유래합니다.
오늘 복음은 양의 문 곁에 베짜타(올리브의 집, 자비의 집이란 뜻) 연못가의 환자 이야기입니다. 베짜타 연못은 기적이 일어나는 신비의 연못이었습니다. 물이 돌 때 들어가면 병이 낫는 그런 연못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병자와 사람들로 항상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연못가에는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38년 동안 병자로 살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38년 동안 그 신비의 연못에서 일어난 기적을 다 보았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안타까움과 수많은 사람의 무관심과 이기심에 치를 떨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그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네십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 그 환자는 주님께 대답합니다.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이 어떻게 들립니까? 저에게는 고발로 들립니다. 나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고발하는 말로 들립니다. 세상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고발하는 소리로 들립니다.
여러분!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제비처럼 울고, 비둘기처럼 탄식하며, 부은 눈을 들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애달픔과 소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그들을 무관심하게 쳐다만 보는 우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고통스러운 세월 속에 탄식하며, 긴 밤을 지새우면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당신을 대신해서 그들의 소리를 듣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손을 내밀어 그들을 잡아주기를 바라십니다. 내 주위에 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손이 되어주십시오. 아멘.
예수님은 건강해지고 싶다는 그의 원의만을 확인하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쓸데없는 질문같기도 하지만 ‘원의’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참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원의(간절한 마음)가 필요한 것입니다. “일어나 네 들 것을 들고 걸어가라.” 일으켜 주기보다는 너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남에게 의존하는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의존성을 버릴 수 있는 은총도 청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독립심도 기르고 그분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도 청합시다.
신앙인은 두 가지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1)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고 하느님의 능력에 의탁하는 자세
2) 자기 스스로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하는 자세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이 지녀야 할 이 두 가지 자세는 성 아우구스티노가 했던 강론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전파 방식도 위의 두 가지를 모두 길러주는 방식입니다. 소금이 너무 많으면 짜서 먹을 수 없습니다. 햇볕도 너무 강하면 피부암이 걸릴 수 있습니다. 비타민 D가 형성될 정도면 적당합니다.
오늘 제 1독서 에제키엘서 47장의 말씀에 나오는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나오는 구원의 물은 곧 예수님께로부터 나오는 구원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의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에게 그분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원의가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복음전파의 의지, 원의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베짜다 연못의 병자에게 필요했던 것도 낫고 싶다는 원의, 예수님 말씀대로 들 것을 들고 나가고자 하는 최소한의 원의가 필요했습니다. 최소한의 원의, 이것마저 없는 사람은 예수님도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국 격언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꼭 필요하다면 말로 하십시오. 그러나 행동으로 복음을 실천하십시오.”
<우리를 귀찮게 하소서>(Disturb us, Lord)
우리를 귀찮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너무 우리 자신에 만족해 있을 때,
우리가 너무 작은 꿈을 꾸었기 때문에
우리의 꿈이 쉽게 이루어 졌을 때,
우리가 해변을 끼고 너무 가깝게 항해하여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했을 때,
우리를 귀찮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여
생명수에 대한 갈증을 상실해 버렸다면,
우리가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영생을 꿈꾸는 것을 잊어버렸다면,
새 땅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가 노력 하느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어두워졌다면,
우리를 귀찮게 하소서 주님!
더욱 용감하게 모험하도록
너무 해변에 가까이 있지 말고 바다 먼 곳으로 가게 하소서.
그리고 우리를 밀어내소서.
더 이상 땅이 보이지 않을 때 별을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소망의 지평선을 보게 해달라고 간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밀어내소서!
미래를 위한 힘과 용기와 소망과 사랑을 위해
우리 인생의 선장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