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화요일 강론
한국말 사자성어 중에 칠전팔기(七顚八起)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는 뜻인데 여러 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 노력하여 끝내는 성공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도 좌절의 순간을 겪었습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위하여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가 되어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바알의 예언자 500명과 싸워 이김으로써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승리하였지만 왕후 이세벨에 의해 쫓기는 동망자가 됩니다. 다윗은 죄를 지어 하느님의 징벌을 받기도 하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배반을 당해 도망가는 밑바닥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셨고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이스가리옷 유다에게 배반을 당하셨습니다.
절망의 순간은 항상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옵니다. 그런데 위대한 분들은 절망의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파괴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 제 1독서 이사야서 49장에서도 말합니다.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꼐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소중한 존재요, 우리의 보상은 우리의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코로나19로 너무 실망, 좌절하지 말고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이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실 것이라고 희망해야겠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어린아이들을 부르듯이 부르십니다.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이제 제자들과 마지막 작별을 앞두고 계신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이 있고 나서 고별의 말씀을 하시게 됩니다. 3년간 가르친 제자들이지만 여전히 연약하고 어린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은 배반으로 돌아옵니다. 유다는 스승을 팔아먹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 버립니다. 예수님은 외롭게 혼자서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왜냐하면 당신께 힘이 되어 주시고 함께 계시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이 당신의 십자가 길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먹은 유다는 처음부터 준비된 악인은 아니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 하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유다의 사랑과 존경은 자신의 목적에 따라 이용될 뿐입니다. 유다만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 예수님을 팔아먹을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유다를 나쁜 놈으로 치부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공경하고 있는지! 상황에 따라서 예수님을 사랑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는 그런 나는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으뜸가는 사도 베드로의 연약한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늘 큰소리치지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으로부터 으뜸 사도, 반석의 역할을 맡으라고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그 누구보다도 더 주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했던 위인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사도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할 정도로 연약한 면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모습은 또한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정말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할 가능성을 언제나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
인공호흡기나 완치자의 혈장을 이용한 치료의 기회가 되었을 때, 예를 들어 10명의 환자가 있는데 치료제는 7명분 밖에 없다고 한다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3명의 명단에 내가 포함된다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7명에 들고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진 않을까요? 7명 중에 포함된 누군가를 끌어내리고 내가 그 안에 들려고 그들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와 베드로는 상반된 인물인 것 같지만 실상은 같은 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 자신이 유다이기도 하고 베드로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긴 자>가 될 수도 있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며 배반한 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를 유다 같은 사람이라고 힐책하거나 비난하지 맙시다! 그 누구를 베드로 같은 배신자라고 욕하지도 맙시다! 다만 내가 유다가 될 수도 베드로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연민과 용서로 다가가며 겸손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주님 어려운 순간에 당신을 따를 용기를~